[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독일 속 16개 나라’… 州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 강화로

입력 2013-09-08 17:36


독일은 사실상 16개 작은 나라들의 구성체다. 16개주(州)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물론 복지나 치안 같은 국가가 해야 하는 기본 업무들이 주에 맡겨져 있다.

주정부는 주의회 선거에서 직접투표로 뽑힌 다수당이 꾸린다. 선거 날짜도 주별로 다르고, 정권 임기조차 4∼5년으로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연방정부와는 다른 이념과 성향의 연정을 구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방의회(Bundestag)와 균형을 맞춰 주정부가 파견한 대표들로 구성돼 있는 연방참사원(Bundesrat)도 정당색보다는 지역 정체성과 주민 이익을 대변한다.

지방자치단체 규모에 따라 다르나 대개 주는 50∼200명의 의원으로, 광역단체인 크라이스(Kreis)는 40∼100명,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는 10∼60명 의원으로 의회가 구성된다. 주총리는 8∼13명의 장관을 임명하며 기본적으로 재무, 내무, 법무, 경제 및 교통, 농업, 노동 및 사회복지, 문화 등의 부처가 있다.

◇연방개혁으로 더 커진 주정부 권한=독일은 2006년 9월 1일 연방과 주정부 간 관할권 배분과 관련한 기본법 조항을 수정했다. 여러 이슈에 대한 입법 권한을 주정부에 더 나눠줘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지지부진했었다. 그러나 초국가 정부인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주의 역량 강화를 위해 자치권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요구가 더 거세졌다.

이에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CDU·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의 대연정은 2005년 다시 이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냈고, 이듬해 연방개혁을 명문화했다.

핵심 내용은 연방의회와 주정부를 대표하는 연방참사원 간의 권한 조정이다. 당시 헌법에 따르면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의 3분의 2 이상은 연방참사원 승인을 받아야 했다. 주정부는 이 권한을 양보하는 대신 환경 문제, 공무원 급여 등을 스스로 결정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연방정부와 방향이 다른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예컨대 교육에 있어서는 의무화 여부, 수업시간, 대학 등록금 유·무상 여부를 주정부와 의회가 정하게 됐다. 때문에 어떤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주별로 제도가 달라질 수 있게 됐다. 특히 무상교육 체제였던 독일 16개주 중 7곳이 연방개혁에 힘입어 대학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에 부닥쳐 5곳이 등록금을 폐지했고, 남은 2곳 가운데 니더작센주는 지난 2월 중도 진보의 SPD가 집권하면서 폐지를 약속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세금 자율인상권이나 철도, 도로 등 공공사업에 대한 계획 및 심사 등은 연방정부 소관으로 남아 있어 또 한 차례의 연방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州끼리 경쟁 과잉’=독일에선 과도한 지방자치로 인해 경쟁 심화 구도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부자 주와 그렇지 못한 주 사이 재정건전성 차이가 나타나면서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주마다 제각각인 제도들 때문에 국민 혼란이 가중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가렐트 뒨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부 장관은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독일 연방 제도는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제도”라면서도 “전체가 아닌 16개 경제 규모를 주 안의 작은 정치가 결정하다보니 중앙정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사안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디르크 힐버트 드레스덴 부시장도 “솔직히 독일의 엄격한 지방자치는 피곤하다”고 털어놨다. 주마다 살 길을 찾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주정부에 가해지는 압박이 높아지고 경쟁은 심화된다”며 “지방자치를 통해 자연스러운 통일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잘사는 주가 못 사는 주를 도와야 하는 폐해도 일어난다”고 꼬집었다.

실제 바이에른·헤센 등 3개주는 다른 13개주 예산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초 이 같은 연방헌법상의 재정 재분배 정책에 반기를 들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묻는 소송을 낸 상태다.

뒤셀도르프=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