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이옥희 인도 선교사] 사람이 희망이다
입력 2013-09-08 17:23
공부하고 싶어 돈 훔친 형제에 장학금… 목회자로 ‘보은의 길’
한 청년이 땅바닥에 몸을 구부리고 고개를 양 무릎 사이에 파묻은 채 울고 있었다. 그 청년을 만난 이후로 나는 배움에 목마른 자들을 위해 기꺼이 구걸하는 사람이 되었다.
청년은 1박2일 동안 기차를 타고 밤새워 먼 길을 달려왔다. 마지막 학년의 등록금을 구해야 했다. 일말의 희망을 걸고 첸나이에 있는 교단본부에 장학금을 호소했으나 “사정은 딱하지만 예산이 없어서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 청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교단 총무에게서 청년의 자초지종을 들은 뒤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혼자 결정해버렸다. 그 얘기를 들은 청년은 머리를 조아려 내 발에 입을 맞추며 감사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리의 나눔이 한 청년을 좌절에서 일으켰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장학금 사역의 가능성과 희망을 깨닫게 했다.
그날 이후 밤낮없이 국제전화로 긴급 모금을 했다. 교우들이 모아준 비상금을 합해 불과 며칠 사이 무려 10명분의 장학금을 마련해 교단본부에 전달했다.
그 뒤부터 해마다 4월이면 청년의 눈물과 미소를 떠올리며 장학금을 모금한다. 여느 사람들의 말처럼 장학금 후원은 결코 외화 낭비가 아니다. 우리 후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아시아의 형제자매들을 희망으로 세우며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아시아의 청년들이 보다 나은 미래,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장학금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이 희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 사람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개선하고 개혁하며 더 나은 미래와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게 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와 정의, 이웃을 위해 희생과 고난을 감수할 수 있기에 피조물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장학금은 가난한 풀뿌리 청년들을 희망으로 세워준다. 지금은 작아서 겨자씨에 불과한 청년들이지만 그들이 성장하면 희망의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작은 장학금이 청년들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면 무엇인들 마다하겠는가!
흉년으로 신학생 전원이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실맛신학교 장학금 후원은 기장여신도회와 서울 한신교회의 도움으로 오랫동안 전학생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해마다 20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학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번은 웃지 못할 상황으로 장학금이 지원된 사례도 있었다. 인도교회를 방문하신 한국 분들이 밤늦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돈을 분실한 적이 있었다. 그 차에 타신 한국 분이 인도 형제가 돈을 훔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분은 자신이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고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한밤중에 나의 숙소로 찾아왔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분이 지목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잠을 깨웠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를 울며 간곡히 설득한 끝에 돈을 돌려받았다.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2년 동안 원하지 않는 휴학을 한 뒤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돈은 없지만 공부를 포기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댔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다. 우리는 같이 울면서 기도했고 그 형제의 학업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게 되었다.
지난 겨울 오지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는 ‘동방박사 트립’ 중에 압둘라뿌람 마을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학교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아 시골교회 목회자로 부임한 것이었다. 할렐루야! 그는 잊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그날밤의 일을 먼저 꺼내면서 “그때 제가 다시 태어났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지난해 3월 아쌈 지역에 있는 다원(茶園)을 보기 위해 카짤에 갔다가 오지 마이콜린에서 일하시는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만났다. 버스터미널에서 두 분이 영접해주셨는데 “저희는 학생입니다(We are your students)”라고 소개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저에게 그들은 “한국의 한국 기독교 장로회 교단이 보내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동북인도 아쌈 오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우리의 장학생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다.
연장자이신 랄힐로 목사님은 그 지역의 시찰장이셨고 3명의 목회자와 함께 18개 교회를 돌보고 계셨다. 그분은 졸업식 때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셨다. 랄 람린 전도사는 교회 산하에 있는 기숙사에서 사감으로 학생들의 신앙과 생활을 지도하고 계셨다. 새벽에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열악한 환경에서 청소년들이 꿈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힘차게 할 수 있도록 격려했고,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퍼주는 신실한 전도사였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두 분의 사역을 돌아보니 그동안 장학금 사역으로 받은 크고 작은 상처와 피로감이 말끔히 지워졌다.
첸나이포트 부근 등기소에서 비영리법인 등록을 할 때의 일이다. 법인 정관 맨 뒤페이지에 증인 2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해줄 사람이 없어 운전사를 찾아서 등기소 밖으로 나왔다. 운전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나게스와리가 내게로 오고 있었다. 나게스와리는 고등법원에 가는 길에 나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던 것이다.
당시 나게스와리는 초보 여성 변호사로서 사무실에서 연수 중이었다. 그가 1년 전 어떤 심부름으로 나를 찾아와서 변호사가 된 자초지종을 듣는 중에 우리 장학금으로 마지막 학기를 마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기쁨으로 “나게스와리, 그 장학금 한국교회에서 온 장학금이야! 가난한 청년들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네가 그 장학금을 받았구나. 어려운 형편에서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마쳤다니 고맙다”고 소리쳤다. 우리는 서로 포옹하면서 기쁨을 나누었다.
그 순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장학금 사역에 동참하는 분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수혜자를 지적하지 않고 일반 장학금을 교단에 보냈을 경우 그 수혜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시간을 내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내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나는 장학금을 후원해주신 모든 분을 대신해 감격을 맛보며 겨자씨처럼 작은 것을 크게 써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동안 교단, 신학교들, 노회들, 기타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장학 사역을 실시하였고 우리의 장학생들이 세상 속에서 희망이 됨을 보고 있다. 디뿌는 동케랄라 지역에 있는 정부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쏘실리야는 하이데라바드 신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조셉은 데칸고원 시골교회에서 목회자로 일하고 있고 석·박사 과정 동안 지원받은 수닐은 ACTC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메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영국에서 일하다 이제는 자기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교회가 인도에 심은 사랑으로 계속 교사와 기술자, 목회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배출될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학금 나눔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는 희망의 예술이다.
이옥희 인도 선교사
● 이옥희 선교사
-1956년, 전북 이리여고·한신대·한신대 신대원 졸업, 1991년 목사 안수
-기장 총회·전서노회 1997년 파송
-기장 총회 파송 남인도교단 선교사(현)
-비전아시아미션 파송 인도선교사(현)
-인도독립교단 실맛신학교 한국 협력 책임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