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명문대처럼”… 전인교육 ‘기숙형 대학’ 바람

입력 2013-09-08 19:21


연세대 국제캠퍼스 ‘송도학사’ 운영 실태

5일 오전 9시30분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를 출발한 무료 셔틀버스가 인천 송도에 위치한 국제캠퍼스에 도착하는 데에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을 벗어난 버스가 인천 지하철 1호선 ‘캠퍼스 타운’역을 지나 국제캠퍼스 내 ‘송도학사’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25분. 학생들이 주로 수업을 듣는 종합관 강의실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울 강남에서 신촌까지 걸리는 시간과도 엇비슷했다. RC(Residential College·기숙형 대학) 도입 초기 학생들 사이에서 ‘송도=유배지’라 불릴 정도의 거리감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기존 ‘학원형’ 한국 대학교육 시스템을 ‘전인교육형’ 시스템으로=전교생이 1학기 이상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RC(Residential College·기숙형 대학)를 가장 먼저 도입한 건 연세대학교다. RC프로그램은 학습과 생활의 통합을 통해서 국제화 교육, 전인교육, 창의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명문형 교육 모델. 연세대학교는 2013년 신입생부터 RC를 도입, 신입생을 절반으로 나눠 한 학기 동안 의무적으로 송도국제캠퍼스에 신축한 기숙사 ‘송도학사’에서 지내도록 하고 있다. 이번 학기 국제캠퍼스 RC(Residential College·기숙형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이들은 상경대학·경영대학·이과대학·글로벌학부에 재학 중인 1학년 신입생 2500명. 1학기에는 문과대학·공과대학·교육학과·간호학과 신입생들이 거주했고, 내년에는 1학년 신입생 전원(4000명)이 이곳 RC에 입주하게 된다.

RC의 장점은 학생이 교수와 함께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공부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체육·봉사 등 전인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하버드·예일·프린스턴, 영국의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등 명문대는 오래전에 도입했다. 수십 년간 지속돼왔던 기존 ‘학원형’ 한국 대학교육 시스템을 다양한 생활체험 교육을 통해서 ‘전인교육형’으로 선진화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이곳 RC 신입생들은 신촌캠퍼스에서 받을 수 없는 맞춤형·밀착형 ‘3중 학생지도 시스템’의 지도를 받는다. 강의 위주의 교육시스템에서 탈피해 학생 개개인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 발현시킬 수 있도록 ‘전공교수-학사지도교수-RC 지도교수’ 3명이 연계해 1명의 신입생을 키워내는 방식이다. 특히, 학생들의 개성과 취미 별로 나뉜 기숙사 내 8개의 하우스(House)에서 학생들의 생활지도 및 인성 함양을 맡고 있는 RC 지도교수의 역할은 크다. 하우스에 상주하며 학생들이 공부나 생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취미생활도 같이 한다. ‘백양 하우스’의 RC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시스템 생물학과 조진원 교수의 경우 단편영화·힙합·K-pop·댄스·아카펠라 등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모아 함께 대중문화예술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즐기고 있다. 지난 1학기에는 직접 만든 단편영화 4개를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RC 신입생들이 전인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많다. 리포트 표절 방지 교육 등 학문윤리나 생활윤리 등을 배울 수 있는 수업 ‘RC 101’, 인천지역 초·중·고교생들에게 방과 후 학생지도를 하는 ‘연인(延仁) 프로젝트’를 비롯, 다양한 문화·예술·체육·봉사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이날 송도국제캠퍼스 자유관에서 만난 장수철 RC교육원장(학부대학 부교수)은 “생애전환기인 대학 1학년은 청소년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시점이며 성공적인 대학생활의 초석을 세우는 시기”라며 “RC는 대학 1학년 학생들이 다양한 성장배경과 교육경험을 지닌 사람들과 학습활동의 장은 물론 소그룹 공동체 속에서 4년간의 대학생활을 설계하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정 학부대학 교수는 “통계에 의하면 한 학기 1회 학사경고자의 절반이 1학년, 주간 공부시간이 9.11시간으로 인터넷 사용시간 9.95시간보다 적게 조사될 만큼 학습에 소홀한 학생들이 많다”며 “학습(Learning)과 생활(Living)의 통합을 통해 이런 점이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RC학생들 성취도·집중도 올라…기숙사 비용·선후배간 유대감 문제는 여전=학습과 생활이 통합된 연세대학교 RC 시스템의 장점은 실제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서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지난 1학기 이곳 국제캠퍼스에서 수업을 받았던 공과대학 학부생들의 학점 평균이 똑같은 수업을 들었던 신촌캠퍼스 학생들의 학점 평균을 넘어섰다. 장 교수는 “공과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 교수님들도 ‘RC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집중도가 눈에 띈다’는 평가를 한다”며 “학습활동의 장과 거주의 공간이 결합되다 보니 학업에 대한 집중력은 물론 공부의 절대량이 자연스레 상승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기숙사 입주를 통해 생기는 비용 문제다. 신촌캠퍼스에서 통학을 할 때 들어가지 않아도 될 기숙사비와 식비 등이 들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 이날 오전 송도학사 앞에서 만난 1학년 이모(19·여)양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이 신촌캠퍼스에서 10분 거리여서 기숙사비가 들지 않았는데 한 학기 120만원 정도의 비용이 추가적으로 든다”고 말했다.

기숙사 하우스 안 소그룹 공동체나 3중 학생 지도 시스템 등이 있긴 하지만, 선·후배사이의 유대감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여전히 지적되는 문제다. 셔틀버스 안에서 만난 1학년 김모(19)군은 “신촌캠퍼스에 고교동창회가 있어 올라가는 길”이라며 “다른 과 친구들 중 나 혼자만 국제캠퍼스에 있어 교류가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년 1학년 전체로 확대되는 RC 교육을 위해 건물 신축 등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다양한 RC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며 “RC를 경험해 본 학생들이 2학년에 올라가는 내년부터는 기존의 문제점이 점차 해결돼 갈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송도=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