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장지영] 시카고 컵스

입력 2013-09-08 18:20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특히 구단들을 괴롭혀온 징크스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밤비노의 저주’ ‘블랙삭스의 저주’ ‘염소의 저주’ 등 3대 저주다.

밤비노의 저주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초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 뒤 번번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놓치자 생긴 말이다. ‘밤비노’는 베이브 루스의 애칭으로 당시 구단주는 루스의 기량을 과소평가해 양키스에 헐값으로 넘겼다. 그 이전까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양키스는 루스의 활약으로 명문 구단이 됐고, 이후 27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저주도 2004년 보스턴의 우승으로 86년 만에 끝이 났다.

블랙삭스의 저주는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고의로 경기를 패배했다는 스캔들에서 비롯됐다. 당시 구두쇠 구단주에게 분노한 화이트삭스 선수 8명이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들을 커미셔너 직권으로 추방시켰다. 이후 화이트삭스는 88년 만인 2005년 마침내 우승하며 저주를 풀었다.

염소의 저주는 시카고 컵스가 지난 1908년 우승 이후 월드시리즈 정상을 밟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컵스가 마지막으로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1945년 디트로이트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 컵스가 2승1패의 리드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한 농부가 염소를 야구장에 데리고 들어가려다 제지당하자 “앞으로 컵스는 절대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폭언했다. 이 농부의 저주 때문이었는지 컵스는 3승4패로 역전패하며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컵스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오랜 기간(105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으로 남아 있다.

3대 저주 가운데 유일하게 깨지지 않은 염소의 저주가 과연 언제 풀릴지도 흥미롭지만 컵스는 올해 한국 팬들에게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임창용이 38살이라는 한국 나이에 컵스의 선수가 됐기 때문이다. 임창용은 8일 컵스 홈구장인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밀워키와의 경기에서 7회 초 중간계투로 등장, ⅔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야구팬들은 그동안 선수생활의 고비마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뛰어들었던 임창용이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우길 바란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던 임창용의 행보를 지켜보자.

장지영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