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23) 지방자치의 힘

입력 2013-09-08 17:25


중앙정당 틈새 파고든 ‘풀뿌리黨’… 무시못할 존재감

독일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의회 본회의장에 의원들이 모였다. 회기 중은 아니었지만 몇 가지 안건에 대한 의견청취 차원이었다.

한 해적당 의원은 미국의 무차별적인 정보감시 실태가 세계적 이슈가 된 상황을 설명하고, 주내 IT 시스템과 관련한 조사 필요성을 피력했다. 핵발전소와 에너지 문제도 거론됐다. 의원 발제가 이어지는 동안 “옳소” “절대 불가” 등의 외침이 의원석에서 자유롭게 터져 나왔다. 객석의 100여명 넘는 주민들도 같은 방식으로 참여했다.

특이한 점은 연방의회에 진출하지 못한 군소정당인 해적당이 이곳 주의회에서 의원 20명을 배출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독일에는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CDU·CSU) 연합, 사회민주당(SPD), 자유민주당(FDP), 녹색당, 좌파당 등 5대 정당 외에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당들이 꽤 된다.

지역정당들은 1940∼60년대 강세를 보이다 70년대 전후로 거대 정당에 밀려 쇠퇴기를 맞았다. 하지만 90년 통일을 기점으로 경제·사회·지역별 상황에 따른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위한 지역정당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지역정당의 존재는 다른 말로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뜻한다. 중앙정치와는 별개로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대변해 쭉 그 지역에서 활동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적 정당이 소홀히 하거나 미처 보지 못하는 정치적 핸디캡을 보완할 수 있어 지역민들의 지지가 적지 않다.

올해 6월 기준으로 16개 주의회 의원 1875명 중 87명이 지역정당 소속이다. 그 가운데 7곳에서는 주의회에서 교섭단체가 만들어져 있다.

바이에른 주의 자유유권자당(FW)은 21석을 차지해 주의회에서 제3당이다.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해적당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20명), 베를린(15명), 작센(6명), 자를란트(4명)에서 총 45석을 얻었다.

작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에선 극우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민족민주당(NPD)이 각각 8명, 5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비교섭단체로는 남슐레스비히연합(SSW)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서 활동 중이다. SSW는 이 지역에서만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을 막는 ‘5% 허들’을 적용받지 않는다. 덴마크계 소수민족(약 5만명)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2석이던 SSW는 CDU·CSU 연합과 SPD가 주도하는 연정 모두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하자 SPD·녹색당에 손을 들어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다.

주 밑에 있는 기초단체 선거에선 지역정당의 활약이 더 크다. 1994∼2010년 지역정당은 매년 3분의 1의 득표를 했다. 함부르크의 생태민주당,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가족당, 브란덴부르크의 국민연합(DVU) 등이다.

뒤셀도르프=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