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숨쉼교회 안석 목사 "사장님으로 불러 주세요."
입력 2013-09-08 16:03
광주광역시 수완동의 숨·쉼교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전용재 감독회장이 지난 7월 당선 직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칭찬한 곳이다. 전 감독회장은 “건강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며 “숨·쉼교회가 도서관으로 지역사회를 품고 자연스럽게 전도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과연 어떤 곳이기에 전 감독회장이 감동을 받았을까. 지난 4일 숨·쉼교회를 찾아갔다.
교회는 아파트촌 한쪽의 조금 한적한 자리에 마치 펜션처럼 아담하게 지어진 아이보리색 건물이었다. 1층에는 전 감독회장의 말대로 도서관과 카페가 있었다. 밝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카페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목사님 뵈려고 왔습니다.” “아, 대표님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뒤 안석 목사가 내려왔다. 왜 목사가 아니라 대표라고 불릴까.
“우리 동네에선 아저씨, 사장님 뭐 이렇게들 부르세요. 저도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고 20년 이상 서울에서 부목사와 담임목사로 살았거든요. 하지만 교회가 마을 사람들과 인격적으로 만나려면 호칭부터 연연해선 안 될 것 같아요. 저희 아내도 동네 언니, 동생, 아니면 이름으로 부르세요.”
대형교회 목사의 딸로 자라고 신학대를 거쳐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온 사모는 동네 언니로 살아가는 지금이 “사람으로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고 한다. 안 목사는 2010년 이 곳에 교회를 개척한 뒤 1년 6개월 동안 사모와 함께 화장실 청소와 설거지를 하며 카페와 도서관을 운영했다.
-그게 쉬웠습니까.
“쉽지 않았죠.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에는 널찍한 개인 사무실에, 38평 아파트에 살았고 사무실 청소나 서류 작업 해주시는 분들이 따로 계셨거든요. 여기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다른 직원 없이 저희 부부가 하루 12시간 이상을 카페에 붙어 있어야 했어요. 목사로서 권위적인 모습을 버려야 한다고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삶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회의감도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결국엔 그게 은혜의 과정이었어요.”
-왜요?
“설거지할 때가 가장 기도가 잘됩니다. 목사님들께서 교회 식당에서 설거지 100인분쯤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목회자가 예배 때에는 최상의 예의를 갖춰 회중 앞에서 서서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을 인도하지만, 제단에서 내려와서는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노동을 해야 하잖아요. 카페와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그걸 익혔지요. 예복 입고 설교하고 축도하는 목회자이면서 화장실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요.”
-도서관과 카페 사장입니까, 교회 목사입니까.
“저에게는 카페와 도서관도 교회입니다.”
-카페와 도서관이 어떻게 교회가 되나요.
“현대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소비하고 소유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잖아요. 저희는 도서관과 카페를 통해서 소비·소유의 문화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창조의 질서를 거룩하게 지킬 것인가, 어떻게 하면 창조주 앞에서 겸손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메시지를 전하지요. 또 이 마을이 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네가 되도록 실천하는 일들도 여기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동역자들도 여기서 찾았구요.”
교회가 마을 속에 자리 잡기 위해선 목사가 먼저 동네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안 목사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저씨,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기자와 대화하는 중에도 “구청 예산심의에 와 달라” “학교 매점 조합을 맡아달라”는 주민들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광주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다는데, 2년6개월만에 지역 사회에 큰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구청이나 학교에 가면 제가 목사로서 이야기하지 않고 동네 주민으로 이야기해요. 어떻게 하면 교회에게 보탬이 될까, 기독교에 도움이 될까하는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목회자 이전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한명의 사람으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불러주더라구요.”
사실 요즘엔 교회가 세상을 섬기기보다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보니 목사라는 직업, 교회라는 단체가 세상에 무수히 많은 이익단체 중 하나처럼 비춰지고 있다. 안 목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기독교인의 본래 역할을 찾기 위해 아저씨, 사장님, 대표로 불리는 길을 선택한 것 같다.
-왜 이런 방식으로 목회를 하시는 건가요?
“교회의 한복판에서 한계를 느꼈어요.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부목사, 목회자와 성도가 영혼과 영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나요? 서로 해야 할 이야기와 해선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 한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2007년 샘물교회 사태가 목회의 전환점이 됐다고 안 목사는 이야기했다. 한국 교회 자체가 엄청난 논란에 휩싸여 있었는데도, 막상 교회들은 “샘물교회만의 문제”라며 남의 일처럼 여기는 모습에 분노까지 느꼈다고 한다. 목회 현장에서 고민할 때 만난 곳이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였다. 그 곳에서 자신의 고민이 교회의 역사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도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확신했다.
“교회가 외적인 성장에 매달리고, 목회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개혁이나 변화를 말해도 결국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어요. 단순히 카페나 도서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한계를 넘어서 교회가 세상 속에 파고들어가 세상과 만나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한 것이죠.”
-목사님께, 목회는 뭔가요?
“저는 분명해요. 목회는 삶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목회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다 목회를 해야 해요. 가운 입고 설교하고 심방 다니는 것만 목회가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을 실현해내는 삶 자체가 목회라고 저는 봅니다.”
-전통적인 스타일의 목회는 아닌데, 힘들거나 후회되지는 않으세요?
“솔직히 여기 내려와서 1년 정도는 굉장히 갈등했습니다. 전통적인 스타일이 편하고 익숙하니까요. 익숙한 것에 돌아가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잖아요. 그러나 마음을 정하고 욕망을 내려놓기 시작했을 때부터 행복해졌어요. 사람을 동원해야할 대상으로 보거나 목회자로서 체면을 차려하는 관계로 만나는 게 아니라 동네사람으로 만나면서 영혼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익숙한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진리의 힘만 붙잡으며 나아갈 수 있게 됐으니까요. 저 자신도 가면을 내려놓은 것 같아요.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하다는 안 목사의 고백을 들으며, 전 감독회장이 왜 숨·쉼교회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광주=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