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지킴이 3인방] 개찰구서 삑∼ 삑∼ 번뜩이는 ‘매의 눈’
입력 2013-09-07 03:59
지난 3일 오후 6시30분쯤 최모(63·여)씨가 지하철 2호선 당산역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부정승차 단속 요원인 서울메트로 이웅섭(46) 대리는 낌새가 이상했는지 최씨에게 다가가 “승차권을 확인해보자”고 했다. 최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남편의 경로우대권을 내밀었다. 경로우대권은 만 65세부터 사용할 수 있다. 최씨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해 보니 63세였다. 조회 결과 최씨는 이 경로우대권으로 1년 가까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었다.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그렇지 원래는 65세가 넘는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최씨에게는 범칙금 36만원이 부과됐다.
지하철 부정승차 단속 요원들은 제대로 요금을 내지 않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는 일을 한다. 이들 사이에서 특히 단속 잘하기로 소문난 3명이 있다. 당산역 이 대리, 사당역 조병두(55) 대리, 창동역 유영안(57) 과장은 부정승차 단속의 ‘달인’으로 통한다.
이 대리는 서울메트로가 집계하는 부정승차 단속 실적에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올 1∼8월 부정승차 2050건을 적발해 부과금 7300만원을 물렸다. 2위를 기록 중인 사당역 조 대리를 크게 앞서고 있다. 이 대리는 “부정승차 승객들은 단속에 걸릴 수밖에 없다”며 단속 요령을 설명했다.
요령은 크게 두 가지다. 승차권을 개찰구에 갖다 댈 때 소리와 표시되는 불빛의 색깔로 어떤 승차권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일반 성인용 승차권은 ‘삑’ 소리가 한번 울린다. 경로우대권, 장애인권, 청소년권, 어린이권 등 할인 승차권을 이용하면 ‘삑삑’ 두 번 소리가 나고, 승차권이 제대로 찍히지 않으면 ‘삑삑삑’ 세 차례 울린다. 일반 성인이 개찰구를 통과할 때 ‘삑삑’ 두 번 소리가 울린다면 부정승차를 의심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후 역무원들은 개찰구에 표시되는 불빛을 확인한다. 빨간색이 표시되면 경로우대권을 찍은 것이고, 파란색은 청소년권, 초록색은 어린이권, 노란색은 장애인권을 이용한 경우다. 부정승차가 의심되는 승객이 나타나면 승차권과 신분증을 확인한다.
단속에 걸린 부정승차자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혐의를 부인한다. “지하철을 탈 생각이 없었다”는 변명이 가장 흔하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개찰구를 통과했다거나 반대편 출구를 이용하려 했다는 식이다. 부정승차가 처음이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승객도 있지만 역무원이 “승차권 이용 내역을 살펴보겠다”고 하면 대부분 꼬리를 내린다.
이 대리는 부정승차 단속에 불만을 품은 사람 때문에 소송에 휘말린 적도 있다. 그는 “1999년에 대학원생이었던 아들의 학생정액권을 사용하다 적발된 사람이 있었는데 ‘부과금이 너무 많다’며 소송을 걸어 2심 재판까지 갔었다”며 “정해진 법률에 따라 집행했는데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사당역 조 대리는 7∼8월 두 달 동안 부정승차자 538명을 적발해 범칙금 2184만원을 부과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하루에 40명을 단속했다. 개찰구 앞에 5시간 정도 서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시간당 8명을 적발한 셈이다. 개찰구로 나오려다 역무원을 보고 되돌아가는 승객도 많다고 한다. 이런 승객을 발견하면 조 대리는 반대편 개찰구로 이동한다. 반대편 개찰구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쭈뼛대거나 다시 되돌아가는 승객은 대부분 부정승차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 대리는 “간혹 부과금의 일부를 역무원이 가져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단속을 많이 해도 역무원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단속 실적 1위였던 창동역 유 과장은 쉬는 시간까지 쪼개 단속에 나선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실적 순위가 현저히 떨어졌다. 지난해 그가 보인 활약 때문인지 창동역에서 부정승차하는 승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올 6∼8월 부정승차자가 지난해보다 40% 이상 줄었다”며 “역무원들이 다른 업무에 집중해 승객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부정승차를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정말로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정승차를 하는 ‘딱한’ 사람들을 접할 때도 많다. 하루 한 끼 식사가 어려운 노숙인들이 적발되면 최소 3만5650원인 범칙금을 요구하기가 난감하다는 것이다. 조 대리는 “요금을 내지 않으면 며칠 후 가스가 끊긴다는 통보 문자를 보여주며 ‘한번만 봐 달라’던 사람도 있었다”며 “형편이 어려워 부정승차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전했다.
지갑을 잃어버려 요금을 내지 못하고 몰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이럴 경우 역무실로 찾아오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부정승차자들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유 과장은 지난 4월 어린이권으로 개찰구를 통과하는 중학생들을 적발했던 얘기를 꺼냈다. 학교에서 견학을 가는 길이어서 훈계만 하고 되돌려 보내려 했는데 담임교사가 전화를 걸어 “견학을 안 해도 좋으니 정식 절차대로 처리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유 과장은 “당시 교사가 ‘하루 견학하는 것보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걸 먼저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청소년들이 적발될 경우 부모가 자녀에게 범칙금을 줘서 직접 납부토록 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부모가 계좌이체를 해도 되지만 자녀들에게 부정승차가 잘못이란 걸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부정승차 단속의 달인 3명은 부정승차 승객들 때문에 제 값을 내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 대리는 “부정승차가 지하철 요금 인상과 무관하지 않다”며 “정직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단속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