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태안 사설 해병 캠프 사고 그 후… 故 진우석군 어머니 ‘눈물의 50일’
입력 2013-09-07 01:38 수정 2013-09-07 10:37
“가장 아름다울 때 안타깝게 떠난 내 아들… 이제 하나님께 ‘바통터치’ 해드렸습니다”
“가장 아름다울 때 안타까운 기억을 남기고 간 아들아, 냉동고에 있을 때가 차라리 좋았지. 만져볼 수라도 있었는데.”
진우석군의 어머니 김선미(46)씨는 지난 1일 우석이의 18번째 생일을 눈물로 보냈다. 어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을 지내며 “우석이를 하나님께 ‘바통 터치’ 해드렸다”고 믿고 일상을 회복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고(故) 김동환 등 5명이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캠프 사고로 숨진 지 49일째였던 4일 이들을 기리는 49재가 오전 11시 천안공원묘원에서 열렸다. 이곳에서 만난 김씨는 지난 49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집에선 밥 한 끼 짓지 못했다. 누가 죽이라도 챙겨주면 간신히 먹고, 며칠 만에 외출해 식당에서 한술 뜨려다가도 금세 수저를 내려놓곤 했다.
신앙이 깊고 공부도 잘해 늘 기특하고 자랑스럽던 아들의 빈자리는 컸다. 김씨는 “제일 깨끗한 것을 받으신다는 하나님이 우석이를 제일 좋을 때 데려가셨다고 믿으려다가도 ‘예수님도 33년 사셨는데 내 아들은 19년을 채 살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남긴 글을 안고 매일 버텼다. 김씨는 “글을 잘 쓰던 우석이는 기자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에 꼭 사람들 심금을 울리는 저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며 애써 웃던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이 남긴 한 자(字) 한 자는 그대로 어머니의 마음에 새겨졌다. 우석이가 떠나고 유품을 정리하다 아들이 일상일기, 연애일기 등 일기장만 두세 권에 나눠 썼던 걸 알게 됐다. 김씨는 “연애일기를 보니 어린 아들이 좋아하는 여학생에 대한 고민을 적으면서 ‘주님 뜻을 구하지 않아 죄송해요’라고 편지를 썼더라”며 눈물을 훔쳤다.
우석이는 공주사대부고에서 제일 오래된 동아리 중 하나인 ‘토요문학회’에서 활동했다. 일기장 외에도 남은 글은 많다. 묘소에 놓인 문집 ‘토요문학 49집’에는 신앙시 ‘이상을 좇으며’와 사소한 것들의 생명력을 그린 ‘잡초’ 등 우석이의 시 세 편이 실려 있었다. 김씨는 “우석이의 글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아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추억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우석이가 떠난 뒤 김씨가 쉬지 않고 들은 찬양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었다. 김씨는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 당신의 아들을 데려가셨으니 이 땅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도 다 해결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태안 사고 유족들은 해양유스호스텔 대표 오모(45)씨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대신 수상레저안전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과 시간이 갈수록 책임을 회피하는 교육부 등 관련 기관의 처신을 비판하며 투쟁 중이다.
김씨는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일을 처리하며 법에 한계가 너무 많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더 이상 비슷한 일로 아이들이 희생되지 않는 게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석이의 죽음이 ‘의미 있는 죽음’이었다고 믿는다.
우석이 생일이던 1일에는 40인승 버스를 가득 채운 친구들이 묘원을 찾아 편지와 선물을 남겼다. 우석이가 활동했던 기독교 동아리 ‘등불’은 찬양예배도 열었다. 김씨는 “죽어서 가장 성대한 생일잔치를 했다”며 저장해둔 동영상을 보여줬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어머니에게 아들의 빈자리는 더 커졌다. 아들이 집에 가끔 내려오면 꼭 안아주곤 했다는 김씨는 “묘소에서 ‘아들, 엄마 왔어. 아들, 오늘은 날씨가 좋네’ 이렇게 말은 계속 건넬 수 있지만 만질 수 없고 안아줄 수 없는 게 너무 허전하다”고 말했다.
희생된 다섯 학생 중 유일하게 우석이의 영정만 증명사진이 아니었다. 사진 속 우석이는 평소 좋아했던 흰 티셔츠에 헤드폰을 목에 걸친 채 환히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아들 얼굴을 김씨가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는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보고 싶으셔서 조금 일찍 데려간 아들을 이제 다시 만날 날만 남았다”며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글·사진=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