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빚내서까지 무상보육 강행해야 하나

입력 2013-09-06 18:19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턱없이 부족한 무상보육 예산을 감당할 길이 없자 서울시가 지방채 발행을 결정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5일 “0∼5세 아이들의 무상보육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겠다”며 “자치구가 부담해야 할 몫까지 서울시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2000억원가량의 지방채를 발행하고 국비 1355억원을 지원받아 올해 무상보육비 부족분을 메울 계획이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무상보육을 위한 지방채 발행은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돼야 한다”며 “이제 중앙정부와 국회가 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무상보육 문제를 정쟁 수단으로 이용해 질질 끌다 대승적 결단이라도 내린 것처럼 한다”고 박 시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치공방을 벌일 사안이 아니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서울시는 올 4000억원의 세수 결손을 예상하고 있다. 재정 적자가 불 보듯 뻔한데도 지방채 발행이라는 고육책을 써서 무상보육 대란을 임시로 막았을 뿐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재정이 충분하다면 보편적 복지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곳간이 비어 있고 앞으로 더 비어갈 걸 예견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혈세로 마련한 재정을 적재적소에 써야 할 책무를 잊어선 안 된다. 빚잔치를 벌이면 국민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사실상 1회성 경비나 다름없는 무상보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적절한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안전행정부는 서울시가 지방채 발행 계획을 통보하면 지방재정법과 시행령 요건에 맞는지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안행부가 지방채 발행을 승인하더라도 무상보육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서울시는 내년에도 빚을 내든지, 다른 사업비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보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자체들의 고통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빚을 내서라도 보편적 복지를 강행할 건지, 재정을 고려하면서 선별적 복지로 전환할 건지 결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