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규의 성서 한방보감] 보약과 사약
입력 2013-09-06 16:54
우린 언제부터인지 한약이라 하면 보약(補藥)인 줄만 안다. 하지만 한약에는 보약뿐 아니라 사약(瀉藥)도 있다. 보약은 허할 때 쓰는 약이고, 사약은 실할 때 몸을 깎는 약이다. 보약과 사약을 논하려면 먼저 허증(虛症)과 실증(實症)을 알아야 한다.
허증이란 허약하다는 말로 원기가 부족한 것을 가리킨다. 원기가 부족할 때는 원기를 도우는 약이 소위 말하는 보약이다. 한의학은 사람의 몸을 기와 혈로 나눈다. 기는 기운을 말하고 혈은 피를 말한다. 남자는 기를 도우고 여자는 혈을 도우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남자의 기를 도우는 대표적인 보약은 사군자탕이요 여자의 혈을 도우는 대표적인 처방은 사물탕이다. 기와 혈이 모두 부족할 때는 사군자탕과 사물탕을 합한 팔물탕을 처방한다. 여기에 두어 가지를 더 넣으면 십전대보탕이요 거기에 녹용을 더하면 녹용대보탕이 된다.
반면에 실증이란 사기(邪氣) 즉, 병기운이 가득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기가 가득할 때는 사기를 깎는 약을 쓴다. 그게 바로 사약(瀉藥)이다. 감기를 예로 들어 설명해본다. 감기 초기엔 열이 나고 온몸이 아프며 기침, 콧물이 흐른다. 이때는 사기 즉 병기운이 가득한 때이다. 이럴 땐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깎는 약, 사약을 쓴다. 사약은 오래 쓰지 않는다. 2∼3일 정도면 끝난다. 하지만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고 별다른 증상 없이 잔기침만 나고 자꾸 피로해질 때, 이땐 사약보다 보약을 쓸 때다. 이럴 때는 감기를 치는 약만 써서는 안 되고 원기를 도우는 약을 써주어야 한다. 그래야 원기가 회복되어 남아있는 감기기운을 퇴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병이 다 같은 원리다. 깎는 약을 써야 할 때인가, 보약을 써야 할 때인가를 잘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잘하는 의자(醫者)를 명의라고 한다. 한방에서 사법을 쓰는 것도 또는 보법을 쓰는 것도 모두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암의 경우는 헷갈리기 쉽다. 암이 오래되면 몸이 마르고 기운이 없어져 자칫 허증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이때는 원기부족보다는 사기가 가득한 실증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보약을 쓰는 게 아니라 깎는 약, 사약을 쓴다. 암종이 심한데 보약을 쓰면 몸과 함께 암도 보하는 것이 되어 암을 크게 키울 수 있다. 의자들이 각별히 조심해야할 때이다.
우리의 육신도 이럴진대 영은 어떨까. 영에도 허증과 실증이 있다. 영의 허증은 어떤 것인가. 성령의 열매의 아홉 가지 성분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온전한 성령의 열매가 못된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아홉 가지 성분이 골고루 깃들었을 때 비로소 열리는 아름다운 하나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허증은 이들 중 어느 것이 부족한 상태이다. 어느 것이 부족한지 아는 진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강화하고 보충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기도한다. 이것은 영적인 보약을 먹는 보법이다.
영의 실증도 있다. 실증은 영적인 무거운 짐이다. 제거하고 벗어내야 하고, 떨쳐버려야 할 무거운 죄, 그 지고 있는 죄의 짐을 영적인 실증이라 한다. 음란한 마음, 욕심, 돈이나 명예로 가득 차 복잡하게 얽혀진 영혼.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흔히 대할 수 있는 영적인 실증들이다.
실증의 치료엔 사법을 쓴다고 했다. 쳐내고 꺾어내고 잘라내고 떨쳐버리는 치료를 한다. 그때 우리는 의지와 결단, 다짐의 기도를 하며 명령의 기도, 축사의 기도, 권세 있는 기도로 악한 영을 대적하는 사법을 쓴다. 영적인 실증에 쓰는 사법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들이다. 영육 간 실증과 허증을 구분함으로써 실하지도 않고 허하지도 않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항상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영혼이 살아야 육체가 사는 존재, 육체와 영혼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김양규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