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칼럼] 남·북의 만남, 최고의 추석선물

입력 2013-09-06 16:56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도 쉽게 풀이 꺾이더니 며칠 새 무섭게 달라지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곧 한가위이다. 명절 분위기를 눈치 챈 것은 하늘의 기운이 바뀐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남북 이산가족 만남의 소식은 부쩍 추석의 들뜬 마음을 실감하게 해 준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개성공단이 어렵게 문을 열었다. 유난히 뜨겁던 여름에도 남북 사이의 줄다리기를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하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개성으로 가는 길이 막혔을 때 그들의 속은 얼마나 탔을까? 당사자가 아니면 그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개성에 이어 이산가족도 상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9월 25일부터 금강산에서 만난다니 이보다 좋은 추석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수고한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고맙다.

남북 사이 갈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산가족의 만남만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남북관계가 너무 오랫동안 막히면서 새삼 신문 1면의 뉴스거리로 떠올랐다. 다른 정치적인 문제가 격변을 만나도 헤어진 가족의 만남은 물 흐르듯 이어가야 하는 법인데, 인도적 왕래마저 빗장을 닫으니 역사가 오랜 과거로 돌아가 버린 느낌이다.

금강산을 방문한 지도 아득하다. 2007년 2월, 감독회장으로 있을 때 장차 금강산 온정리에 있던 옛 감리교회를 복원하겠다는 마음으로 서부연회가 일을 냈다. 당장에야 어렵지만 분위기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온정리 마을에 화덕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겨울철 난방문제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일행은 금강산 관광구역을 벗어나 온정리 마을에 직접 들어가 화덕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호의로 마을 창고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금강산을 오가는 관광버스에서 멀리서나마 주변을 볼 수 있었던 마을인데, 그 한복판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아직 들지 않았다. 그런데 비로소 ‘마을에 왔구나’라고 느낀 것은 예배를 마친 후 작은 그릇에 들고 온 찐 고구마 때문이었다. 북한 주민이 표시한 손님접대는 참 고마운 일이었다. 마을을 찾아온 낯선 우리의 존재를 인정해준다는 것 아닌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달게 먹은 기억이 엊그제 같다.

10년 전에는 평양에서 그런 감상에 젖기도 했다. 첫 북한방문이 부담스럽기도 할 만한데, 우리 일행은 식후 과일 타령을 하였다. 호텔에서 밥을 먹고 나면 과일 한 조각이 나올 법도 한데 번번이 기대를 저버렸다. 우리 일행을 내내 안내해 주던 안내자에게 북에는 과일이 없냐고 물었다. 필경 그는 어느 기관에서 나왔을 텐데 우리의 관심사를 얼마나 철없게 여겼을까. 돌아보니 염치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신천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오르려는데 항상 우리와 동행하던 그 안내자가 보이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면서 그를 찾고 있는데 멀리서 자루 하나를 들고 급히 달려왔다. 땀을 훔치며 하는 말이 마침 신천에 아는 친척이 있어서 과일을 좀 얻어왔다고 하였다. 자루 속에는 참외와 토마토 그리고 오이가 수북이 들어 있었다. 놀란 것은 여름 과일과 채소 때문이 아니다. 우리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고 기어코 마련해 주려던 그 인정이었다.

어쩌면 이산가족의 만남은 그런 인정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당장 정전협정을 바꾸고 핵무기를 중단시키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찐 고구마를 나누고, 참외 한 자루를 베푸는 일은 당장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런 저런 일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생활에서부터 화해와 평화를 도울 것이 아닌가. 심지어 바울은 자기가 감옥에 매인 일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빌 1:18)

지금은 세상을 떠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수차례 만나 회의를 하고 예배도 드린 끝이었으니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다 우리 북한 교회가 둘째 아들이 되었습니까?”

만약 우리가 아버지의 맏이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복음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할 것이다. 남북교회의 만남은 또 하나의 형제가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이 아닐까 한다. 어느새 추석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사단법인 겨레사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