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등 불법증여 급증… 고액 세입자·혼수 세무조사
입력 2013-09-05 18:03 수정 2013-09-05 22:20
A군(18)은 2년여 전부터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지방에 사는 아버지가 고등학생인 자신과 동생을 서울로 진학시키면서 학군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이곳에 전셋집을 마련해준 것이다. 10억원이나 되는 전세계약금은 아버지가 마련했지만 전세권은 A군의 명의로 돼 있다. A군은 이 집에 살면서 19차례나 해외여행을 하는 등 호화생활을 즐겼지만 증여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전세대란’으로 불릴 만큼 전셋값이 급등하는 틈을 타 자녀 등에게 거액을 불법 증여하는 사례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세무 당국은 사상 처음 고액 전·월세 세입자에 대한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국세청은 서울 강남·서초·용산구 등 고가 주택 밀집 지역에 10억원 이상 전세입자, 1000만원 이상 월세입자 등 모두 56명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에 착수했다고 5일 밝혔다. 조사 대상은 해당 세입자 중 연령이나 직업, 신고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다.
세무 당국은 그동안 부모·자식 간의 전세자금 지원이나 혼수 등은 사회적 통념상 용인된다고 보고 사실상 묵인해 왔다. 그러나 전세대란을 틈탄 고액 세입자들의 불법 증여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자 전격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과정에서 자산가들의 파렴치한 불법 행위가 낱낱이 드러났다. 이혼한 뒤 전 남편으로부터 전세자금 명목 등으로 수십억원을 받았지만 증여세는 내지 않은 채 사치를 일삼던 여성도 적발됐다. 국세청은 이 여성이 특별한 소득이 없음에도 18억원의 전세권은 물론 고급 스포츠카와 고가 부동산 등을 소유한 점을 수상히 여겨 조사 끝에 세금 탈루 사실을 적발했다. 조사 대상 중에는 전세보증금만 20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조사 대상자는 대부분 기업인이나 사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고액 전·월세 자금뿐 아니라 이들이 소유한 부동산, 금융자산 등의 자금 출처도 검증키로 했다. 만약 사업소득을 전·월세 자금으로 빼돌렸을 경우 관련 사업체에 대한 통합 조사까지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주택 임대인에 대해서도 소득신고 누락 여부를 검증해 불성실 신고 혐의가 짙으면 세무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서울의 10억원 이상 전세 아파트는 7469가구로 2009년 1월(1703가구)보다 4배 이상 늘었다. 강남구가 4009가구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3192가구) 용산구(233가구) 송파구(20가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