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하다 의문사한 여대생 딸, 15년 만에 진실 밝혀낸 ‘父情’
입력 2013-09-05 17:54 수정 2013-09-06 00:38
15년 전 구마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대구 여대생은 외국인 3명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한 뒤 충격 속에 도로를 건너다 변을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딸을 위한 아버지의 끈질긴 재수사 요구와 검찰의 과학수사가 망자(亡者)의 한을 풀어줬다.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이형택)는 5일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여대생을 끌고 가 성폭행하고 현금과 학생증 등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로 스리랑카인 K씨(46)를 구속기소하고 스리랑카에 머물고 있는 공범 2명을 기소중지했다.
이금로 대구지검 1차장 검사는 “영구미제가 될 뻔한 사건을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의 과학수사 기법과 현장답사, 관련자 진술 등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국내에 머물던 K씨는 1998년 10월 17일 동료 외국인 근로자 2명과 함께 새벽 학교에서 귀가하던 정모(당시 18세)양을 자전거에 태워 인적이 드문 논밭으로 끌고 간 뒤 성폭행했다.
정양은 당시 대구 모 대학교 간호학과 1학년이었다. 정양은 16일 밤 학교 축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오후 10시40분쯤 실종됐다. 다음날 오전 5시10분쯤 학교에서 7㎞ 정도 떨어진 구마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넘다가 23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정양은 숨질 당시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고 얼마 후 사고현장 인근 갓길에서 정액이 묻은 그녀의 속옷이 발견됐다. 유족들은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했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한 채 부검감정서가 나오기 전 사건을 단순교통사고로 종결했다.
K씨는 또 다른 범죄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2011년 9월쯤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권유하다 붙잡힌 K씨의 DNA를 채취했고, 2012년 9월쯤 검찰과 경찰의 DNA 교차체크 때 15년 전 정양 속옷에 묻은 정액 DNA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검·경은 곧바로 재수사를 하지 않았고 지난 5월 31일 정양 유족이 재수사 등을 요구하며 대구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에야 수사에 나섰다.
정양 아버지(66)는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15년 동안 청와대, 법무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60여 차례 탄원·진정과 고소를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경찰 등의 부실수사 때문에 가족 모두가 고통 받았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는 “경찰이 덮은 진실을 내 손으로 밝혀내겠다고 죽은 딸과 약속했는데 이제야 아빠로서 그 약속을 지킨 것 같다”고 말했다.
K씨는 범행 이후 태연히 공장에서 일했고, 2005년 한국 여성과 결혼해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K씨는 최근 성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K씨의 범행 당시 특수강도강간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하지만 2010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이 제정되면서 DNA가 확보된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 연장돼 25년이 됐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