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銀의 역발상… ‘대출 타깃’ 대기업서 자영업자로
입력 2013-09-05 17:48
은행이 대기업·우량 중소기업 대출을 선호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당연한 영업전략이었다. 툭 하면 망하는 자영업자는 대출 기피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식과 영업전략을 뒤집고 발상의 전환을 한 은행이 있다.
하나은행은 저금리 지속에 따른 수익성 악화 타결책을 위험성이 크다고 알려진 자영업자에게서 찾았다. 실제로 ‘소호(SOHO)대출’을 은행의 주요 영업전략으로 수정한 것으로 5일 전해졌다.
소호고객은 개인이 출자하고 동시에 경영하는 기업으로 일반적으로 개인사업자(자영업자)를 말한다. 여기에 10인 미만의 소기업과 소상공인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하나금융그룹 산하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CEO 리포트’가 계기였다. 이 연구소는 지난 6월 중순 리포트를 통해 대기업·우량 중견기업 대출보다 소호대출이 저금리시대에 더욱 효율적이라는 내용을 임원진에 보고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영업자보다 건전성이 높다는 상식과 달리 소호고객의 건전성이 더욱 뛰어나다는 내용이었다. 은행의 여신심사를 통과한 소호고객 대부분이 실제로는 우량 알짜고객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연구소는 소호대출 리스크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적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소호대출의 일부인 자영업자 기업대출의 지난해 말 연체율은 0.89%로 대기업대출 연체율인 0.9%보다 0.01% 포인트 낮았다. 중소기업대출 연체율(1.27%)과는 0.38% 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연체율 변화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비해 안정적이었다. 자영업자 기업대출은 2008년 말 1.53%에서 2009년 말 0.89%로 떨어진 이후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대기업대출은 2008년 말 0.34%, 2011년 말 0.25%에서 지난해 급격히 뛰어 올랐다.
연구소는 소호대출에서 설사 연체 등이 발생하더라도 피해가 크지 않다고 봤다. 차주당 평균대출금이 낮아 위험이 분산된다는 설명이다. 대출 차주 수는 중소기업보다 소호가 많지만 소호의 차주당 평균 대출금은 중소기업의 31% 수준에 불과했다. 소호 3곳이 연체가 시작돼야 중소기업 1곳의 연체와 위험이 비슷해지는 것이다. 소호대출의 경우 파산하더라도 회수 가능성이 높은 것도 장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속칭 ‘남의 돈’으로 기업이 꾸려지지만 소호는 대부분 자기자본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만큼 오너의 책임감이 훨씬 크다.
보고를 받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소호대출 확대에 매우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공식적으로 독려하진 않지만 점진적으로 소호대출을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은행 소호대출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7.24%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중소법인 대출이 연평균 1.79%에 머무른 것과 대조적이다.
금감원은 하나은행의 영업전략 변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소호대출이 은행 건전성에 더 도움이 되고 소상공인과 ‘윈윈’할 수 있다고 판단, 각 은행들의 소호대출 현황 파악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호의 정착을 은행이 도우면서 대출지원에 나선다면 은행은 충실한 고객을 얻을 수 있고, 소호 사업자들은 저리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어 서로에게 큰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