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방사능 생선 먹을 건가
입력 2013-09-05 17:36 수정 2013-09-05 16:47
지난 몇 년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된 고등어 대구 등 일본산 수산물 3000t이 유통됐다. 최대 검출량은 98베크렐/㎏이었다. 수입 허용의 기준치는 100베크렐/㎏ 이하이다. 딱 ‘2’의 차이로 방사능 생선이 안전식품으로 둔갑해 식탁에 올랐다. 불안과 분노는 당연한 반응이다. 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지목한 정부가 방사능 오염 식품을 방치하다니.
소비자들은 들끓는데 정부는 움직일 마음이 없어 보인다. 한해 일본과의 수산물 교역량은 2만∼3만t에 불과하다. 전면 수입금지를 선언한데도 대단한 일은 아니다. 광우병 파동이 몇 년 전이다. 먹거리 불안이 가진 정치적 파괴력을 모를 리도 없다. 그래도 정부는 여전히 미적댄다.
들어보니 이유가 있다. 음식에서는 절대 검출되면 안 되는 물질이 있다. 이를테면 살모넬라균이나 리스테리아균 등이다. 벤조피렌은 발암물질이지만 양이 문제다. 벤조피렌은 삼겹살 굽고 참깨 볶을 때 흔히 나온다. 안 먹고 살 순 없어 기준치 이하로 관리한다. 지난해 ‘벤조피렌 라면 사태’는 두 범주를 혼동해 사달이 났다. 방사능 물질은 말하자면, 살모넬라균이 아니라 벤조피렌이다. 방사능 물질은 인스턴트 커피나 조제분유에도 들어있다. 다들 일상적으로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도 많이 먹으면 큰일 난다. 기준이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100베크렐/㎏이란 기준치는 안전한가. 방사능 물질을 먹어 생기는 내부피폭은 밀리시버트로 표현한다. 오염도가 100베크렐/㎏인 생선을 연간 10㎏ 먹었을 때 피폭량이 0.013밀리시버트이다. 학계에서 암 발생률과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100밀리시버트의 8000분의 1 수준이다.
보행사고로 죽을 위험이 인구 1000명당 1.6명이라면, 0.013밀리시버트 피폭은 0.00065명이다. 우연히 방사능 생선 한 마리 먹은들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물론 ‘0.013밀리시버트는 안전하다’고 말할 근거도 없긴 하다. 하지만 복부CT(컴퓨터단층촬영) 한번에 10밀리시버트가 피폭되는데 0.013밀리시버트를 문제 삼는 건 호들갑이다. 설명을 듣다보면 “안전하다”는 정부의 고집을 이해할 수 있다. 검역을 통과해 식탁에 오른 일본 수산물은 먹어도 좋다.
불행히도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과학적으로는. 소비자들은 ‘과학적으로 위험하지 않다’는 정부 설명에도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웹사이트에 공개한 보고서 ‘방사능의 오해와 진실’에는 “교통사고로 매년 7000명이 사망하지만 차량을 없애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맞는 말이다. 차 없애기를 포기하는 대신 우리는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한다. 쓰나미는 천재지변이었지만 방사능 생선은 이웃 일본의 무능과 무책임이 낳은 인재다. 그들이 어지른 쓰레기를 치우며 우리가 얻을 편익은 뭔가. 다수 국민은 부정적이다.
보고서는 방사선작업을 하는 사람의 피폭 기준치가 일반인보다 20배 정도 높은 이유를 ‘선택’으로 설명했다. 위험 감수를 능동적으로 결정한 이와 아닌 사람의 차이다. 검역을 통과한 3000t 일본산 수산물을 누군가는 먹었다. 하지만 그게 ‘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먹거나, 먹지 않을 선택권도 없었다. 선택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아예 수산물 전체를 외면하는 거다.
더불어 기억할 것. 사람들이 찾는 건 먹어서 죽지 않는 음식이 아니라 좋은 음식이다. 무항생제 달걀과 유기농 채소에 기꺼이 몇 배 값을 치르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소비자와 눈높이를 맞춰야 일본 식품에 대한 해법도 나올 것이다.
이영미 정책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