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트콤 등장 20년, 최고 작품은?… 용녀, 순풍산부인과가 최고래 최고!
입력 2013-09-05 17:29 수정 2013-09-05 21:22
1993년 2월 첫 방송된 ‘오박사네 사람들’(SBS)은 우리나라 시트콤의 시초로 통한다. 드라마와 코미디가 뒤섞인 내용, 코믹한 장면에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음향 등은 당시 안방극장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국 시트콤 ‘코스비 가족’ 등에 익숙해져있던 시청자들은 ‘국산’ 시트콤의 등장에 신기해했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방송사들은 수많은 시트콤을 선보였다. 시청자를 웃기고 울린 히트작이 줄을 이었고, 이들 작품에 출연해 재조명받거나 스타로 거듭난 연기자도 많았다.
본보는 올해 20년을 맞은 우리나라 시트콤 역사를 정리해보는 차원에서 대중문화평론가 12명을 상대로 설문을 진행했다. ‘최고의 시트콤’을 각 2편씩 추천받아 순위를 매겼다.
◇한국 시트콤은 ‘김병욱’으로 통한다=전문가들이 으뜸으로 꼽은 시트콤은 ‘순풍산부인과’(SBS)였다. 응답자 중 절반인 6명이 이 작품을 언급했다. 베테랑 연기자 오지명(74) 선우용녀(68) 박영규(60) 등이 맹활약한 ‘순풍산부인과’는 1998∼2000년 방영 당시 국민적 인기를 누렸다.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 등 모든 부분에 있어 한국 시트콤의 원형을 만들어냈다”(평론가 윤석진) “미국 시트콤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난 작품이었다. ‘한국형 시트콤’의 시작이 됐다”(이영미)….
다음으로 많은 지지(4명)를 이끌어낸 작품은 ‘거침없이 하이킥’(MBC)이었다. 2006∼2012년, 시즌3까지 만들어지며 인기를 끈 ‘하이킥’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원로 배우 이순재(78)가 야한 동영상을 즐기는 ‘야동 순재’를 연기해 화제가 됐고, 나문희(72) 박혜미(49) 등의 호연도 돋보였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시트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젊은층의 지지가 대단했던 작품이다”(하재근) “시트콤도 잘 만들면 작품 자체가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정덕현)….
신동엽(42) 송승헌(37) 등이 톱스타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된 ‘남자 셋 여자 셋’(MBC), 풍자와 해학이 돋보인 ‘안녕, 프란체스카’(MBC)를 호평하는 발언도 적잖았다. 우리 시대 여성들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올드미스 다이어리’(KBS2)를 꼽는 목소리도 있었다.
설문 결과에서 눈길을 끄는 건 전문가들이 언급한 11편 중 김병욱(52) PD가 메가폰을 잡은 시트콤이 1·2위에 오른 ‘순풍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을 포함해 5편이나 된다는 점이다. 김 PD는 케이블 채널 tvN을 통해 23일 새로운 시트콤 ‘감자별 2013QR3’를 선보인다.
“시트콤은 웃음이 목적인 장르이지만, 김병욱 감독은 그 안에 계급에 대한 인식이나 죽음에 관한 문제까지 녹여내죠.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든 감독이에요.”(김선영)
◇시트콤의 ‘봄날’은 다시 올 수 있을까=2000년대 초반, 방송가엔 시트콤이 봇물을 이뤘다. 최근 2∼3년 동안 방송가를 강타한 ‘오디션 열풍’처럼 당시 방송사들은 드라마보다 적은 제작비로 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시트콤 제작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요즘 시트콤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하이킥’ 시리즈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히트작도 없다. 야심 차게 선보였다가 조기종영의 칼날을 맞은 작품도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시트콤의 인기가 추락한 이유로 코믹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가 시트콤 자리를 대체했다는 점, 졸속으로 만들어진 안일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는 점 등을 꼽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선 요즘도 시트콤 인기가 높은데, 우리나라는 아니다. 시트콤 연기는 과장돼야 한다거나, 한 회마다 이야기가 완결돼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김교석)
“요즘 대중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유머, ‘짜여진 웃음’에서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끄는 데서 알 수 있듯 자연스러운 웃음을 선호한다. 이러한 대중들의 기호도 시트콤의 인기가 떨어지는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김헌식)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순)=공희정 김교석 김선영 김헌식 신주진 윤석진 이문원 이영미 정덕현 정석희 하재근 황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