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무쌍 토끼들의 모험담… 글 없이 그림으로 들려준다
입력 2013-09-05 17:28
토끼들의 밤/이수지/책읽는곰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등의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 이수지(39)의 오래된(?) 신간이다. 2003년 스위스에서 ‘토끼들의 복수(La Revanche des Lapin)’란 제목으로 출판됐고, 그해 ‘스위스의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뽑히며 주목받았다. 출판사와의 계약문제로 국내 출간을 못하다 이번에 그림을 새로 다듬고 ‘토끼들의 밤’이란 제목을 달아 드디어 출간됐다. 그의 두 번째 그림책으로, 국내에서도 보고 싶다는 독자들이 꽤 많았다.
아이스크림 트럭이 지나간 자리에 쓰러진 토끼 한 마리가 보인다. 그 밑에 ‘어느 뜨거운 여름날….’ 이라고 적혀 있는 첫 페이지를 제외하곤 글이 없다. 글 없는 그림책은 다들 어렵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이수지의 그림 속 토끼는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사랑스럽고 친근한 이미지의 토끼와 거리가 멀다. 기묘하고 거친 느낌의 토끼들은 한편으론 다소 오싹한 기분까지 느끼게 한다. 작가는 2001년 영국 유학 당시 스코틀랜드 여행 중 처음으로 ‘토끼 조심’ 표지판을 봤고, 실제 토끼들을 만났던 경험에서 착안해 이 책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는 당시 런던 하숙집 근처에 살던 아이스크림 장수의 모습에서 착안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의 꿈인지, 토끼의 꿈인지 알 듯 모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기묘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토끼들의 대담무쌍한 아이스크림 절도 사건으로 볼지, 로드킬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으로 볼지는 순전히 독자 마음에 달렸다.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