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홍수,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입력 2013-09-05 17:26


자기 절제 사회/대니얼 액스트/민음사

저자가 미국 대사성질환 및 위절제술학회 연례회의에서 만난 그레그 킬고어. 그는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전동 화장실 리프트시트를 만든다. 최근엔 몸무게가 272㎏(600파운드)까지 나가는 사람도 쉽게 일으켜주는 ‘리프트시트 600’을 넘어 340㎏까지 감당할 수 있는 모델을 고민 중이다. 미국에서 한 해 시술되는 체중 감량 수술은 22만 건에 달한다. 고도 비만자와 위절제술은 인간이 자기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굳이 이렇게 극단적인 예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대인은 매일 자신과의 싸움에 목숨을 걸고 있다. 새해 계획과 각종 다짐, 일과표를 지키기 위해 온갖 장치와 수단을 동원한다. 동시에 각종 중독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술, 담배, 마약 등 약물을 비롯해 햄버거와 콜라 같은 정크 푸드, 커피로 대표되는 카페인 음료, 여기에 쇼핑과 인터넷 도박, 스마트폰 게임, 포르노 사이트, 심지어 상습적인 외도까지 중독 대상이다. 미국에서는 자제력 부족에 따른 흡연, 과음, 폭식, 위험한 성행위 등으로 연간 10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의 6.7%에 해당하는 333만 명이 술이나 마약, 게임, 도박에 중독됐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중독 문제는 심각하다.

자기 절제가 어려워진 만큼 자기 절제를 잘 하는 사람에겐 커다란 보상이 따른다.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된 연구 결과, 지능지수(IQ)보다 자제력이 학업 성적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절제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뒤 좋은 직장을 얻고, 건강관리도 잘 하는 사람들이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유수 매체에 기고하는 인기 저널리스트 대니얼 액스트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절제가 중요해진 현 상황을 조명한다.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자제력을 둘러싼 인류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풍부한 사례를 통해 유혹 과잉 시대에 어떻게 잘못된 욕망을 절제하고 올바른 욕망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 답을 찾는다.

그동안 행동심리학과 진화생물학, 뇌과학 등 현대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자제력과 자유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각종 연구 결과를 쏟아냈다. 버지니아대 신경과학자들은 소아 성애 성향을 보이던 교사가 전두엽에 생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정상적으로 회복된 사례까지 찾아냈다.

심리학자 마크 R 리리는 “인간은 오늘날 현대 생활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자제력을 발휘하도록 진화되지 않았다. 선사시대 조상들은 현대인들이 매일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신경생리학자 벤저민 리벳은 인간의 두뇌가 선택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기 전에 이미 행동을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파란을 일으켰다. 유전적 요인과 호르몬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은 사실상 자유 의지를 포기하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자유 의지는 가능하며, 그래도 자기 스스로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게 낫다고 말한다. 단, 각종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혼자 힘으로 버티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책을 수립하라고 조언한다.

그리스 신화 ‘바다의 요정’ 세이렌의 노래에 홀릴 것에 대비해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했던 오디세우스처럼 사전 예방 조치는 지금도 효과적인 대안이 된다. 또 말레이시아 ‘펭가목’ 케이스에서처럼 정부 차원의 적정한 규제 역시 중요하다. 펭가목은 분노 등 광기를 보이며 손에 잡히는 무기로 폭력을 휘두르는 20∼40대 남성을 이르는데, 사회적으로 이들의 폭력은 용인돼왔다. 하지만 정부가 사지 절단 등의 강력한 처벌을 도입한 뒤 펭가목의 폭력 발생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자기 절제를 위한 각종 전략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의 홍수 속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종합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다양한 논의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가는 책이다. 구계원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