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영의 눈이 열린 발람
입력 2013-09-05 16:55
민수기 24장 1∼9절
모든 인간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한 가지 눈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육신의 눈도 있고, 지식의 눈도 있고 영의 눈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눈을 가졌느냐에 따라 보이는 세계도 있고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도 있습니다.
동물들도 눈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이 종종 덫에 걸려 죽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물을 보는 눈이 있는데 왜 동물들이 덫에 걸려든 것입니까. 동물에게 사물을 보는 눈은 있으나 지식의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인간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신비한 눈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의 눈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방 점쟁이요, 술사였던 발람이 영의 눈을 떠 세상을 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험한 광야 40년을 다 지나 가나안 땅 입구인 모압까지 왔습니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부릅니다. 발람에게 뇌물을 건네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저주하라고 부탁합니다.
이제 땅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선 사탄의 역사를 막아주셨습니다. 발람의 입을 통해 저주 대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게 만드시고 발람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발람은 눈을 뜨고 전능자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영의 눈을 열어 준 것은 발람이 저주하려고 했던 그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인가를 보여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자 발람은 그 백성의 참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찬양합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민 24:5∼6)
성령의 역사로 영의 눈이 열린 발람의 첫 번째 감탄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죽음의 땅이라고 원망하고 불평했는데 발람은 그 거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떨 것 같습니까. 광야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열불이 나고 속이 뒤집히지 않겠습니까. 아마 발람이 그들 곁에 있었으면 돌팔매질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밑바닥 인생을 살며 허덕이는 사람 옆에서 “당신은 참 복도 많은 인생입니다. 당신의 인생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축복으로 들리겠습니까 아니면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리겠습니까.
같은 광야를 바라보는데 이스라엘 백성과 발람이 보는 눈이 왜 이렇게 다른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바로 영의 눈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닙니까. 발람의 눈에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 있는 야곱의 장막이 아름답게 보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거처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광야 길이지만 야곱의 장막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광야에 있어도 하나님의 품에 있는 야곱의 장막이 행복한 것처럼 우리 장막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복된 모습을 볼 영의 눈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 입니다.
오세선 목사 (홍천 명업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