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얽히고설킨 ‘맛의 역사’ 좇다
입력 2013-09-05 18:18 수정 2013-09-05 22:12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휴머니스트
짜장면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까.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이런 추측은 가능하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인천 제물포엔 돈을 벌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중국인이 많았다. 당시 이들은 끼니를 저렴하게 해결하려고 ‘중국된장’ 춘장을 이용한 면 요리를 자주 먹었을 거다. 그리고 이 음식은 자연스럽게 조선 땅에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짠맛이 강한 ‘중국 짜장면’과 달리 춘장에 물을 섞고 감자 양파 등을 넣은 ‘한국 짜장면’이 유행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여기서부터는 다양한 데이터와 정부 정책을 곁들여 분석해봐야 한다.
1948년 국내 중국 음식점 수는 332개소였다. 그런데 64년 통계에선 그 수가 2307개소로 늘어난다. 중국 음식점이 급증한 데는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첫째는 정부가 63년부터 화교의 토지 소유를 금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는 것. 농업에 종사하던 화교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식당 영업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중국 음식점 사업에 관여하는 화교 비율은 58년 58.2%에서 72년엔 77%까지 증가했다.
두 번째 이유는 정부의 혼분식(混粉食) 장려 정책이다. 산업화 시기, 분식이나 혼식을 장려해 음식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이 정책은 짜장면 대중화에 크게 일조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밥상엔 다사다난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어느 음식이든 간단치 않은 스토리를 품고 있으니 음식 문화를 이해하려면 녹록지 않은 공부가 필요하다. 책은 우리가 허투루 보아 넘기거나 씹어 삼켰던 수많은 음식들에 대한 심층 보고서다.
“나는 이 책에서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음식 메뉴들의 본래 모습과 진화 과정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중략) 그것은 한국인들이 20세기를 한반도에서 살면서 경험한 세계와 관련이 있다. 어떤 음식에는 정치적 관계와 경제적 맥락이 깊이 개입되어 있으며, 우연히 발명한 음식에도 음식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조건이 내재되어 있다.”(26∼27쪽)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부 교수인 저자는 한국인이 20세기부터 사랑한 갖가지 음식들의 궤적을 추적한다. 60명 넘는 연구자들 도움을 받아가며 1500건 넘는 음식 관련 자료를 분석했다. 설렁탕 빈대떡 비빔밥 냉면 만두 등 34가지 음식의 변천사가 실려 있다.
저자가 분석 기간을 20세기로 한정한 건 해외 문화 유입으로 이 시기 우리 식문화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우선 일제시대엔 조선요리옥과 선술집 같은 근대적 외식공간이 생겨났다. 이는 한국인의 ‘메뉴’가 달라지는 단초가 됐다. 이후 한국전쟁 땐 남북한 사람들이 교차하면서 남북 토속 음식이 뒤섞이게 됐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엔 이농한 도시인들 향수를 달래주기 위한 식당이 번창하고 수입 식자재가 급증했다. 90년대 이후엔 다국적 음식이 유행을 타면서 식당들 맛도 개성을 잃기 시작했다.
“메뉴의 종류나 맛은 강북이나 강남이나 분당이나 똑같아졌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음식점의 프랜차이즈화는 음식점마다 지니고 있던 독특한 손맛을 사라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513쪽)
맛깔 나는 음식 이야기에 빠져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 순간 변화무쌍했던 20세기 한국 역사를 확인하게 된다. 음식 문화를 알려면 기원과 유래를 좇을 게 아니라 해당 음식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 사회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지 간파해야 한다는 점도 책이 던지는 메시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