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끈 라이벌 의식의 전말… 김윤식 비평집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입력 2013-09-05 18:11


비평집도 이쯤 되면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문단 비사 같기도 하고 이면사 같기도 하다. 등장인물은 내로라하는 우리 시대의 문학 논객들, 주제는 라이벌 의식이다. 라이벌끼리 짝을 지어 글을 풀어가는 이는 원로 비평가 김윤식(77·사진). 제목은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그린비).

“서라벌예대 동급생인 전라도 장수면의 욕심쟁이 박상륭과 충청도 보령 관촌 마을 출신의 ‘독종’ 이문구와의 만남의 기묘함은 소설 쓰기와 술 먹기의 절묘한 균형감각에서 왔다. 이 균형감각의 파탄을 내심으로 바라는 ‘키 큰 평론가’(박상륭 용어)가 있었다. ‘문학과 지성’을 이끌어 나간 두목 김현이 그다.”(15쪽)

김동리 소설의 샤머니즘을 극복하기 위해 칼날을 벼르던 김현은 박상륭의 ‘칠조어론’(1994)이 나오자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김동리의 서라벌예대 직계 제자 박상륭으로 하여금 김동리를 치게 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 김동리의 ‘자기 동네식 샤머니즘’은 박상륭에 의해 세계화되는데, 이는 박상륭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 7년 수도 생활을 한 결과였다.

김현이 꼽은 김동리 극복의 다음 타자는 역시 서라벌예대 출신의 이문구라는 검객이었다. 이문구가 뽑아든 칼의 이름은 ‘관촌수필’(1977). 이문구는 김동리의 샤머니즘을 잘게 썰어 더 미세한 지방성으로 끌고 간다. 관촌 골목에서 뽑아낸 생생한 에피소드는 지방성으로 특권화됐던 것. 저자는 이를 두고 “서라벌예대의 두 수제자가 스승을 배신하면서 스승을 빛낸 기적이자 장관”이라고 탄성을 지른다. 하지만 이는 김윤식이 설정한 다섯 가지 라이벌 의식의 한 케이스에 불과하다.

경성제대의 아카데미즘 앞에 도전장을 낸 학자 양주동, ‘불온시’를 놓고 한 판 승부를 겨룬 시인 김수영과 문학평론가 이어령,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총체성이라는 거대담론을 선점하려는 해외파 영문학자 백낙청과 국내파 불문학자 김현의 보이지 않는 대결 등 문단이라는 중원에서 펼쳐진 걸출한 검객들의 겨루기는 소설보다 더 감칠맛이 난다. 저자인 김윤식이라는 검객도 예외는 아니니, 김윤식이 쓴 김윤식을 찾아 읽는 재미는 덤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