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구슬픈 운명의 궤적… 윤대녕 신작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

입력 2013-09-05 18:10


“비바람과 눈보라의 여로에서 우연히 만났다 뜨겁게 헤어졌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은 비록 여럿이었으나 결국 단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감정은 그들과 만나 다만 조용히 눈물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작가의 말’)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은 소설가 윤대녕이 “눈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으니 새삼 그의 나이를 가늠해보면 어느새 쉰둘이다. 나의 눈물에 남의 눈물이 겹쳐지는 나이. 그의 신작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문학동네)에도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은 장면들이 여럿이다.

표제작엔 전국 방방곡곡으로 물건을 팔러 다니는 방물장수 부부가 나온다. 신혼이었던 두 사람은 사과꽃 필 무렵, 길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남의 과수원 옆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아내가 “저녁참이 되면 왜 물고기들이 물 위로 튀어 오르느냐”고 묻자 남편은 대답한다. “그야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우리가 지금 꽃 핀 과수원 옆에 앉아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몸짓이 저토록 아름다워 보인다는 게 그저 불가사의할 따름이군.”

이 장면은 서두에 불과하다. 값비싼 도자기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남편은 어느 날부터 남의 집 도자기를 훔치는 도벽이 생긴다. 그날도 어느 식당에서 간장단지로 쓰고 있는 백자달항아리를 본 남편은 산길로 차를 몰다가 문득 아내를 차에 남겨놓고 식당으로 달려간다. 그 사이, 아내는 낯선 사내 둘에게 강간을 당하고 만다.

남편은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달래며 아내가 가자는 대로 차를 몰고 간다. 아내가 인근 저수지에 투신한 것은 다음날 아침. 시신을 수습한 남편은 그 옛날 사과꽃 필 무렵, 아내와 삼겹살을 구워먹던 과수원 기슭에 아내를 묻는다. 그런 후로도 남자는 도자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전국을 떠돈다.

윤대녕은 삶이 아름답다거나 살아볼 만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도자기로 인해 아내를 잃고도 도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도자기 박물관’의 주인공처럼 삶 자체의 타자성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반달’의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러 차례 남자친구를 바꾸는 어머니와 불화하다가 군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와 여행을 떠난다. 아들은 차가운 밤바다를 바라보며 동요 ‘반달’을 부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존재의 결핍이 스며있음을 깨닫게 된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2절 가사까지는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 불을 끄고 눕자 기다렸다는 듯 도둑고양이들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때문에 어머니도 나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중략)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구한테나 고독이고 고통이겠지’.”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뒤척인다. ‘반달’은 그 자체로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가. 산다는 게 반쪽의 영혼이 또 다른 반쪽의 영혼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던가.

윤대녕은 ‘작가의 말’에 “마지막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소설들이 길 위에서 쓰여졌음을 확인했다”며 “그래서 내게는 길이 곧 집(우주)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여로에 서 있음이 나의 운명임을 수긍하기에 이르렀다”고 썼다.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들은 고통과 죄책감 속에 있지만 이 역시 존재의 거처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니, 이 소설에 초대받은 자는 뜻밖의 위안을 얻을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