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 ‘A매치 데이’ 아시나요… 같은날 입사시험 몰려 구직자 ‘발동동’
입력 2013-09-04 18:13
“수년간 준비해온 게 단 하루에 끝나버리니까 답답합니다.”
금융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이모(24·여)씨는 다음달 예정된 ‘A매치 데이(day)’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A매치 데이는 원래 축구 국가대표팀 간 경기가 열리는 날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구직자들의 취업 우선순위에 있는 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입사시험을 치르는 날을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다음달 19일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기관들의 대졸 신입공채 필기시험이 동시에 열린다. 금융기관은 평균 연봉이 1억원 내외로 처우가 좋고 정년이 보장됨에 따라 구직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매년 응시생만 수만명 수준이다.
금융기관 공채일이 겹치다보니 구직자들의 눈치작전도 한창이다. 1년 동안 도서관에서 자격증·토익 공부를 하며 준비한 이씨 역시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을 결정하지 못했다. 이씨는 “금융기관 취업을 목표로 공부해왔는데 기회가 줄어 걱정이 태산”이라며 “일단 서류전형을 통과한 곳을 중심으로 필기시험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 공채일이 겹치는 A매치 데이도 있다. 이날이 되면 시차가 나는 다른 고사장에 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응시생들이 시험이 끝나자마자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관행은 2000년대 중반 들어 굳어졌다. 시험 일정이 다르면 여러 곳에 중복 합격하는 경우가 생긴다. 애써 뽑은 인재를 타사에 뺏기는 사례가 늘자 금융기관들이 같은 날로 시험 일자를 정한 것이다. 대체로 한은이 시험 날짜를 공고하면 금감원 등 다른 금융기관들이 따라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에는 10월 20일이 A매치 데이였다. 한은, 금감원, 산은, 수출입은행, 정책금융공사, 한국거래소 등이 일제히 시험을 치렀다. 2010년과 2011년에도 A매치 데이는 반복됐다. 최근에는 금융공기업뿐 아니라 일반 대기업들도 금융공기업 A매치 데이에 시험 일자를 잡는 등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금융권 인사 담당자는 “따로 담합을 해서 시험 날짜를 하나로 정한 것은 아니고, 전형 일정이 비슷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A매치 데이가 행정 편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하며 금융공기업들이 자유롭게 시험을 볼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황보헌재(27·한동대4)씨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이기 때문에 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서류 발표가 나면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어디로 갈지 줄을 잘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공기업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수험생들을 조금만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