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속 보이는 이군현 예결위원장 출판기념회
입력 2013-09-04 17:39
국회는 여야 대치로 개점휴업 상태지만 건너편 의원회관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기국회 시작에 때맞춰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눈도장을 찍으려고 오는 인파다. 지난 3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 출판기념회에는 1000명 안팎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천문학적 국가예산을 쥐락펴락하는 감투이니 만큼 참석자 면면도 화려했다. 여야 의원은 물론이고 황교안 법무, 서남수 교육,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지방자치단체 및 대기업 관계자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책 값 명목으로 돈 봉투를 건넸다.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장관과 공공기관장 등은 화환을 보냈다. 공무원들이 지불한 책값과 화환 값은 십중팔구 국민 세금일 확률이 높다. 이런 류(類)의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일정이 앞으로도 줄줄이 잡혀있다.
의원들이 앞 다퉈 출판기념회를 여는 까닭이 있다. 행사 한번에 수억∼10억원은 거뜬히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1억5000만원(선거가 있는 해는 두 배)이 한도인 정치후원금과 달리 저서 판매를 빙자한 출판기념회 모금은 한도가 없다. 개인이나 단체가 책값으로 수백만, 수천만원을 내도 문제가 없다. 게다가 선거관리위원회에 회계보고를 할 필요도 없다. 정치자금법에 관련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선관위 또한 경조사로 취급해 눈감아주는 실정이다. 그러니 의원들이 법적 제약이 따르는 후원회 모금보다 거저먹기식 ‘책장사’로 몰리는 게 당연하다.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는 의원이 바보다.
정치권은 2004년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정치후원금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면서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마련할 합법적 공간을 마련했다. 당시 정치권은 “깨끗한 정치의 시작”이라고 생색을 냈지만 결국 눈 가리고 아옹한 셈이다. 출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할 순 없다. 그렇다고 해도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편법적인 모금 창구로 전락한 출판기념회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책값으로 얼마를 냈는지 낸 사람과 받은 사람은 안다. 좋게 말해 책값이지 뇌물이나 진배없다. 낸 게 있으면 받기를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것들이 유착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부정부패로 귀결된다.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출판기념회를 하루라도 빨리 법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정가 이상으로 받지 못하게 한다거나 선관위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의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고,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