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영화 ‘스파이’로 돌아온 설경구 “흥행 대박? 다 운이죠, 뭐”
입력 2013-09-04 17:17
‘실미도’(2003), ‘해운대’(2009) 두 편의 1000만 영화에 이어 최근 500만 관객을 돌파한 ‘감시자들’까지. 영화배우 설경구(45)가 그간 끌어 모은 관객만 5637만명이다.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가 이번엔 5일 개봉하는 코믹액션영화 ‘스파이’(감독 이승준)로 돌아왔다. 추석연휴 가족 관객을 겨냥한 영화(15세 관람가)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 그의 변신은 유쾌하다. 최고의 스파이인 동시에 ‘마누라’에게 꼼짝 못하는 평범한 가장 김철수 역. 그를 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코믹영화로 탄생한 ‘스파이’=그는 이 영화가 ‘추석용 코믹영화’로 불려지게 된 것에 속이 상한 눈치였다. ‘스파이’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초 ‘미스터 K’라는 제목으로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 지난해 말이나 올 초 개봉 예정이었다. 11회차까지 촬영이 진행된 후 감독이 돌연 교체됐고, 배우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제작자인 ‘해운대’ 윤제균 감독의 코미디와 이명세 감독의 영상미가 만나면 어떨까, 뭔가 묘한 영화가 될 듯한 기대가 있었다. 영상미를 생각했을 때 이야기는 애초 썩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감독이 바뀌면서 스타일 부문이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코미디 비중이 커지면서 다소 평면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담백하게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볼만한 킬링 타임용 무비”라고 정의한다. “추석에 전 부치다 힘든 며느리, 화투치다 돈 잃은 분, 숙취에 힘든 분들 다 와서 편안한 극장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딱 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설경구의 두 여자, 문소리와 송윤아=이 영화에서 부부로 나오는 문소리(39)와는 11년 만에 만났다.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에 이어 세 번째. “우리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스크린에 담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평소에 소리씨 목소리 톤이 영화랑 똑같다. 나한테는 막 반말하다 남편(장준환 감독)에게서 전화 오면 “식사는 드셨어요?”하며 깍듯하게 받고, 전화 끊으면 또 ‘마셔 마셔’하는 분위기다. 워낙 오래된 사이라 소리씨와 로맨틱코미디는 못할 것 같다”며 낄낄댔다.
영화 속 철수는 “아무리 최고의 협상 전문가라도 유일하게 협상이 안 되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와이프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아내인 배우 송윤아(40)와는 어떨까. “물론 타협도 되고 협상도 잘 된다. 우리는 그냥 평범하다. 아내는 평상복으로 마트에 가서 복분자를 경품으로 얻어오기도 한다. 아내가 배우여서 좋은 점은 10초밖에 안나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 밤을 새워도 이해해준다는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줄넘기와 손빨래. 설경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다. 줄넘기는 ‘오아시스’ 때부터 시작해 습관이 됐다. 그는 오전 6시에 스케줄이 시작되면 4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줄넘기를 한다. 그런 다음 땀이 흠뻑 젖은 운동복을 빨래비누로 직접 손빨래 한다. 설경구는 “글쎄. 이게 초심인지 뭔지. 그냥 빨래방에 맡겨도 되는데 줄넘기와 손빨래는 나만의 아날로그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태국 촬영에 갈 때도 혹시 현지에 없을까봐 빨래비누 가져갔다”며 웃었다.
◇흥행의 비결은 굳이 운이라는 남자=그는 출연작 흥행 비결에 대해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실미도’? 내가 고른 거 아니다. 강우석 감독이 ‘기사 나올 거야. 봐’ 해서 보니 배우는 설경구만 결정됐다고 기사 뜨더라. ‘해운대’는 윤제균 감독을 만났는데 계속 울더라. 그래서 그냥 한다고 했다.” 작품보다는 사람을 믿고 가는 설경구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목. “‘감시자들’ 때도 대표가 전화해서 ‘영화 하나 있는데 이거 안 한다고 안 할 거지?’라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그러자 했다. 나한테 줄만하니까 줬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다 잘됐다.”
최근 소속사를 바꾼 그는 “이제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으러 간다”며 “계속 좋은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여운이 남는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거다. 담담하게 봤는데 집에 가니 계속 생각났다. 관객에게 여지를 주는 영화가 좋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