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다메섹의 봄은

입력 2013-09-04 17:39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 얘기다. 그때 바울은 예수를 위험스런 신흥종교의 괴수쯤으로 봤다. 유대교의 율법주의자 바울은 어느 날 예수쟁이들을 잡겠다며 다메섹(Damascus·다마스쿠스)으로 향했다.

바로 그 길에서 바울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집힌다. ‘다메섹 도상의 회심’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바울에게, 아니 그를 통해 전파된 기독교의 오랜 역사에서 다메섹은 잊을 수 없는 곳이 됐다. 다메섹 도상은 죽음과 핍박의 현장이 생명의 빛으로 변모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그곳은 죽음의 현장이 됐다.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하는 시리아는 40여년 독재정권과 반군 간 싸움이 2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미 10만여명이 죽었다. 여기에 정부군과 반군을 지원하는 주변국까지 얽히면서 내전사태는 악화일로다.

다마스쿠스와 시리아는 소아시아·터키와 예루살렘·이집트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구약시대의 아브라함 얘기에도 등장하는 지명일 만큼 유래가 깊지만 지리적 요충인 탓에 침략 당하는 역사가 끊이지 않았다. 앗시리아, 바빌론, 로마제국, 이슬람제국, 몽고, 오스만터키,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 시기를 피압박국으로 살았다.

겨우 1920년 시리아왕국으로 독립했으나 곧바로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46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시리아공화국은 이집트와 연합국으로 합쳐졌다가 다시 분리하는 등 곡절이 적지 않다. 현재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2대 세습권력이다. 그의 취임은 2000년인데 아버지의 통치 시기를 합하면 독재는 벌써 44년째다.

반독재 투쟁은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2000년 젊은 알아사드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변화의 기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취임 당시 알아사드는 민주화를 포함한 개혁정치를 표방했고 서구와의 관계개선도 거론했다. 사람들의 기대도 커지고 이른바 ‘다마스쿠스의 봄’이 오는 듯했다.

하지만 봄은 없었다.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의 공격에 사담 후세인 체제가 단숨에 붕괴되는 것을 보고 알아사드는 정권유지에 혈안이 됐다. 이미 1968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로 통하는 남쪽 국경지역인 골란고원을 1968년 이스라엘에 빼앗긴 이래 시리아가 표방해온 반이스라엘 노선은 반미주의와 결합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대립의 골은 깊고 길다.

2000년 전 예수의 사랑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 시작 지점인 바로 그 다메섹 도상이 지금 울부짖고 있다. 다메섹의 봄은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