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혜훈 (4) 수학 약했던 나를 경제학과로 보내신 까닭은?
입력 2013-09-04 17:15
새로 바뀐 입시제도 하에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를 얻었지만 전공학과를 정하는 과정에는 난관이 많았다. 나의 희망과 부모님의 뜻, 학교의 생각이 모두 조금씩 달랐다.
본고사 체제에서는 먼저 학교를 선택해서 시험을 보고 그 결과에 따라 당락이 정해졌다. 본고사가 폐지된 이후에는 학력고사라는 4지선다형 시험을 보고 점수를 받은 뒤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서 응시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자신의 전국 석차를 알고 난 뒤 입학원서를 넣는 방식이었으니 학교 입장에서는 진학실적을 올리기 위해 학생 개인의 희망이나 적성보다는 기왕이면 유명대학 유명학과에 지원하도록 권했다. 심한 경우 입학원서에 학교장의 직인을 찍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학생의 선택에 개입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 분 작품의 배경으로 자주 나오는 고대 유적 탐사에 관심이 많아져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완강히 반대했다. 법대에 대해서는 여학생이 평생 죄지은 사람만 상대하는 것은 안 된다며 부모님이 마뜩지 않아하셨다. 수학에 소질도 흥미도 없었지만 경제학과에 진학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학교와 부모님 모두 만족하신 걸로 위안을 삼았다.
대학 초년생 때는 수학이 핵심인 경제학과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고 학과를 옮길까 재수를 할까 어떻게든 도망갈 궁리만 했다. 하지만 군인 출신인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호랑이 어머니 때문에 과도 옮기지 못하고 재수도 못했다. 그러던 내가 경제학과를 졸업만 한 게 아니라 온통 고급수학만 쓰는 계량경제학으로 미국 UCLA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니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정치인이 되고 난 지금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섭리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8년간 국회에서 한 일들, 그리고 지금도 정치하면서 하는 일들, 한 사회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그 사회를 움직이는 다양한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과 그 작용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고도의 전문성은 경제학이라는 분석적 학문을 익혔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일들임을 날마다 절감하기 때문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거듭 감사를 드렸다. 경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내가 있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 더 감사드릴 일이 있다. 외증조할머니와 어머니의 독실한 신앙덕분에 어릴 적부터 가정예배, 구역예배, 새벽예배, 철야기도 등이 생활화돼 있었다. 우리 집에서 늘 구역예배를 드리던 습관은 나중에 미국이나 영국에서 성경공부를 위해 우리 집을 기꺼이 개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 경험은 정치를 할 때도 귀한 자양분이 됐다.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무렵 학자 출신이면서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말도 잘 걸고 스킨십이 좋다며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는데 우리처럼 교회에서 구역을 섬기고 평생을 성경공부나 기도모임을 키우느라 노심초사하고 새가족반 담당을 수십 년씩 해온 사람들이 아니면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 온 사람을 보면 엔도르핀부터 돌고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사실 나도 정치를 하기 전에는 정치와 교회의 구역예배에 비슷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호와 이레! 오늘을 위해 그때부터 예비해 주셨음을 날마다 감사드린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