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내란음모·선동 혐의] 공백으로 남은 ‘이석기의 8년’
입력 2013-09-04 05:06
국가정보원이 국회에 제출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는 2012년 3월 이전의 이 의원 행적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2003년 8월 이후 8년 7개월간의 행적이 적시되지 않아 해석이 분분하다.
국정원 체포동의서에 포함된 이 의원 혐의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기도 분당 킨스타워에서 자신의 국회 진출을 위한 지지 결의대회에 참석했던 2012년 3월 8일이다. 당시 이 의원이 조직원들과 함께 이적표현물인 혁명동지가를 불러 이적동조 행위를 했다고 국정원은 적시했다. 결의대회 이후 지난 5월까지 이 의원이 여러 차례 비밀회합을 개최한 사실과 발언 등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 이전 행적은 모호하다. 국정원은 “이 의원이 2003년 8월 가석방됐고 ‘알 수 없는 시기’에 민혁당 남부위원회 조직원들을 중심으로 지하혁명조직 RO를 결성했다”고 적었다. 요구서의 각주를 통해 ‘이 의원이 2003년 8월 출소한 점 등을 고려하면 RO는 2003년 하반기 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RO 결성 멤버나 방식 등도 드러나지 않았다. 국정원은 다만 “RO가 조직 결성 이후 전국연합 내 경기동부연합의 중추세력을 형성했고, 2008년 2월 전국연합을 대체하는 한국진보연대가 결성되자 자연스럽게 경기진보연대로 세력을 이전해 핵심부를 장악했다”고 대략적으로 밝혔다.
이 의원을 비롯한 주요 피의자의 행적도 2012년 이후로 집중돼 있다. 2000년대 행적은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이 2008년 10월 경기도 화성 제부도의 한 식당에서 하부조직원들을 대상으로 수련회를 개최하고 암호화 프로그램 PGP 사용법을 설명한 것과 2009년 11월 “경찰 수사에 대비해 사상 교육 자료로 전달한 USB 등 자료 일체를 파기하라”고 지시한 것밖에 없다.
이는 국정원의 수사가 내부 제보자의 도움을 기초로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보자는 2004년 RO에 가입했다가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 이후 전향했다고 한다. 이 의원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흔적을 남기기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이 의원은 RO 조직원의 5대 의무 중 조직보위 의무를 가장 중시했다. 국정원은 이 의원이 통신, 컴퓨터, 문서, UBS, 외부활동 등 분야별 보안수칙까지 정해 철저한 비밀활동을 전개하며 수시로 자료를 파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이나 검찰이 향후 공소 유지를 위해 체포동의요구서에 행적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웅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