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10주기… “교육보험으로 인재 양성·경제자립” 뜻 세워

입력 2013-09-03 18:16


1981년 6월 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대형서점 교보문고가 처음 문을 열었다. 서가 길이만 24.7㎞에 달하는 등 단일 면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당시 환갑이 넘은 신용호 (사진) 교보생명 창립자는 교보문고에 가득한 책을 보면서 새로운 감회에 사로잡혔다.

신 창립자가 교보문고를 광화문에 세우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반대했다. 금싸라기 땅에 ‘돈도 되지 않는 서점’을 개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 창립자는 “한국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에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자.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지혜를 만나게 해주자”며 사내외 반대자들을 설득했다.

신 창립자의 이 같은 의지는 우리나라의 독서인구 저변 확대에 기여했으며, 교보문고를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도심 속 지식문화공간으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 됐다.

오는 19일로 10주기를 맞는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우리나라 생명보험의 선구자이자 교육과 독서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인물이다.

1917년 전남 영암의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신 창립자는 잦은 병치레와 가난으로 초등학교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그는 못 배운 한을 독서로 풀었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됐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자원을 키워내는 것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했고, 1958년 8월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다른 생보사와 달리 생명보험이 아닌 교육보험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우고 보험을 통해 경제자립의 바탕인 자본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교육보험은 한국전쟁 후 폐허 속에 피어오른 교육열과 맞물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86년 삶을 관통했던 키워드는 ‘국민교육’이었고 교보문고 설립을 통해 이 신념은 더욱 구체화됐다.

교보생명은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대산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추모의 밤 행사와 고인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추모 사진전을 개최한다.

고세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