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올해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보시라이 사건, 대대적인 공직부패 단속에 돌입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우리나라의 부정청탁방지법(일명 ‘김영란법’)까지. 세계는 지금 ‘부패와의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국은 다양한 정책과 법안을 내놓으며 국가 곳곳을 좀먹는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애쓰고 있다.
3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 연회장. 아시아·태평양 지역 9개국의 10개 반부패기구 기관장 등 관계자 100여명이 ‘국제 반부패 우수사례 포럼’을 열고 열띤 논의를 펼쳤다.
◇부패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부패의 역사는 인류사 전체와 맥을 같이한다. 로마시대 단어인 ‘부패(corrupt)’에는 ‘여인을 유혹해서 그 육체를 탐한다’는 뜻 외에 ‘관료에게 뇌물을 바친다’도 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도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가난한 백성의 쌀 한 말이라도 빼앗으려는 탐관오리들이 있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한자성어가 있을 정도니 부패한 관리들의 폐해는 역사가 깊다.
세계 각국은 오래전부터 체계적인 반부패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2003년에는 유엔 반부패협약이 탄생했고, 2005년에는 APEC 반부패 투명성 워킹그룹이 출범했다.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G20 반부패 실무그룹’이 설치됐다. 각국 정상들이 “반부패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정책권고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꾸준히 입을 모은 결과다. 실무그룹은 부패를 저지른 사람의 국제금융 시스템 접근을 막고 비자 발급을 거절하는 등의 범국가적 협력 계획을 세웠다.
이날 포럼에서는 각국 기관 관계자들이 차례로 발표를 통해 자국 반부패 정책과 관련한 최신 동향을 공유했다. 호주에서는 공공부문 이익충돌을 관리하는 가이드라인과 로비행위 통제 모델 등 체계적인 부패방지 시스템을 소개했다. 말레이시아는 세관 부패 자금 30억 링깃(약 1조원) 회수를 목표로 하는 ‘30억 링깃 작전(3B Operations)’에 대해 설명했다. 2011년 시작된 이 작전은 세관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말레이시아의 ‘반부패 교육원’도 모범 사례로 꼽혔다. 이외에도 많은 국가들이 강력한 내부고발자 보호 체계와 부패방지기관의 독립성 확보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갈 길 먼 한국, 부패방지 선진국 되려면=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처음 부패방지위원회가 설립됐다.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지만 부패 방지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다는 평가다. 매년 아시아 국가들의 부패지수를 측정해 공개하는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부패점수는 6.98로 부패점수가 가장 낮은 싱가포르(0.74)와 일본(2.35), 홍콩(3.77), 마카오(4.23)보다 심각하다.
앞서 지난 7월 30일 정부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의결했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앞으로 모든 공직자들은 직무와 관련하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금품을 챙길 경우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권익위는 신분비밀보장과 신변보호, 해고 등 징계나 기타 근로조건 차별 방지, 최대 20억원의 금전적 보상 등을 보장하는 신고자 보호시스템도 시행하고 있다.
이성보 권익위원장은 “한국은 짧은 시간에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부패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단시간에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중 일부 관행으로 굳어진 부패를 청산하고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전세계 부패와의 전쟁] 9개국 반부패 기구 서울서 ‘사례 포럼’
입력 2013-09-03 18:08 수정 2013-09-03 2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