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 안 먹히는 성희롱 인권교육 권고
입력 2013-09-04 04:56
경기도의회 교육의원 A씨는 2011년 12월 도내 교육복지센터 교직원 동아리 발표회에서 민요 공연을 하던 여성 교직원들에게 “미니스커트나 비키니를 입는 게 어떻겠느냐”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 수치심을 느낀 교직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지난 1월 A씨에게 특별인권교육을 받으라고 권고했지만 A씨는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A씨는 “(인권위로부터) 교육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동의대 환경미화원들이 관리업체 직원 B씨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B씨가 평소 휴게실에 누워 쉬는 여성 미화원들의 배 위에 눕거나 야한 농담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 5월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했지만 B씨 역시 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인권위의 성희롱 특별인권교육이 겉돌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해 성희롱 관련 진정 232건을 접수했다. 2009년 170건, 2010년 212건, 2011년 219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그러나 피진정인이 성희롱 특별인권교육을 받은 경우는 지난해 19건(8.2%)에 그쳤다. 2009년 9건(5.3%), 2010년 10건(4.7%), 2011년 13건(5.9%) 등에 불과했다. 올해 역시 1∼5월 성희롱 진정 78건이 접수됐지만 지난 4월까지 인권교육이 이뤄진 것은 3건뿐이다.
인권위 권고가 현장에서 무시당하는 이유는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권고 후 언제까지 이행해야 한다는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인권위 관계자는 “권고는 법적 강제성이 없어 피진정인이 끝까지 버텨도 처벌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피진정인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차별시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관련 사항을 언론에 공표하지만 성희롱 관련 권고는 진정인과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알리지 않는다.
성희롱 인권교육이 단발성이어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육은 성폭력 전문가가 피진정인과 한두 차례 총 6시간 정도 상담하는 것으로 끝난다. 한 인권교육 강사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를 설득하는 데 시간을 거의 다 쓰는 경우도 있다”며 “잠깐 상담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 세금으로 성희롱 가해자에게 100여만원 비용을 들여 인권교육을 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인권위 차원에서 허술한 성희롱 특별인권교육 규정을 정비하고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및 교육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