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 조사 급물살-기막힌 탈세 수법] 폐기물을 고가 원료로 위장수입
입력 2013-09-04 05:08
역외탈세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수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세금을 추징당한 인사들의 개별 탈루 수법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3일 국세청에 따르면 코스닥에 등록된 제조업체 사주 A씨는 해외로 기업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2개 설립했다. 이미 세운 페이퍼컴퍼니가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방식으로, 자신과 페이퍼컴퍼니의 연관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같은 수법을 쓴 것이다.
A씨는 2008년 이후 수년간 국내 법인이 나중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로부터 폐기물 등을 정상적인 원재료로 위장 수입하는 수법으로 기업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고 은닉했다. 예를 들어 원가가 g당 1원인 폐기물인 석회가루를 수입한 뒤 이를 g당 1000원짜리 은가루로 속여 수입대금을 페이퍼컴퍼니로 송금하게 했다.
폐기물 등 가짜 원재료 매입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국내외 관계사를 동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회사와 관계사들은 매출 부풀리기 등을 통해 허위 거래를 통한 부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은 A씨는 결국 수백억원의 세금 ‘철퇴’를 맞았다.
부동산 임대업자 B씨 역시 해외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과세 당국에 노출하지 않기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B씨는 이 페이퍼컴퍼니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공장 생산품을 중계무역하는 외국 법인의 주주로 내세웠다. 이후 페이퍼컴퍼니는 외국 법인이 중계무역을 하면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배당을 꼬박꼬박 챙겼고, 이를 통해 B씨는 각종 세금을 탈루했다. B씨 역시 탈루 소득에 대한 세금으로 수백억원을 추징당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C씨는 해외에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현지에 있는 한 법인에 기술용역 제공 명목으로 받은 수수료 등 대가를 자신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계좌에 넣는 수법으로 해외 소득 신고를 누락해 왔다. 이 과정에서 C씨는 용역을 제공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꾸미는 대담한 시도도 했다. 국세청은 C씨에게 수억원의 탈루 세액을 추징했다.
개인사업자 D씨도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뒤 국내 거래처에 용역을 제공해놓곤 마치 페이퍼컴퍼니가 용역을 제공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작성해 수수료를 챙겨 왔다가 발각됐다. D씨는 부동산과 고급차를 구입할 비용이 필요할 때마다 해외에 숨겨둔 자금을 환치기 등 수법을 통해 국내로 반입해온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들통났다. D씨는 세무 당국으로부터 수십억원 규모의 세액을 부과받았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혐의자들은 세금 없이 재산을 국외로 빼돌리기 위해 대부분 조세피난처에 실체가 없는 유령 회사인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를 악용했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