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 조사 급물살] 기업 오너와 일가족 96명 최다… 30대 재벌도 포함
입력 2013-09-03 17:51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와 연관된 사람 가운데에는 기업 오너와 그 일가족이 가장 많았다. 국세청으로부터 역외탈세 사실이 확인돼 추징을 당한 사람 가운데에는 30대 그룹 재벌도 있었다.
국세청이 확보한 자료에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확보한 내용도 대부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구체적인 신원 파악과 함께 역외탈세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 오너 일가 최다, 30대 그룹 재벌도 포함=국세청이 신원을 확인한 267명 가운데 기업 오너 및 일가족이 9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업 임직원(50명), 금융인(42명), 해외 이주자(28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종사자가 58명으로 수위를 차지했고 금융(42명), 도매(32명), 서비스(25명), 해운(20명), 부동산(17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에는 30대 그룹 재벌은 물론 코스닥 상장사 기업 사주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인의 페이퍼컴퍼니 최초 설립 시점은 2000년대 이전이지만 가장 많이 설립된 시기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7∼2008년이었다.
국세청이 지난 6월 확보한 400기가바이트(GB) 분량의 자료는 페이퍼컴퍼니 설립 전문 대행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설립 목적은 물론 재무정보, 설립 대리인, 회사명, 임원과 주주의 인적사항, 이메일 송부자료 등 페이퍼컴퍼니를 둘러싼 각종 정보가 포함돼 있다.
명단에는 그동안 ICIJ와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폭로해온 한국인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뉴스타파가 공개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물론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이수영 OCI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아들 선용씨 등의 자료도 모두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미 확인된 인사들 외에도 다른 재계·금융계·문화계 인사들이 추가로 밝혀져 세무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 개별 정보는 그동안 계속 수집해 왔지만 이렇게 대량 정보를 일괄 수집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속도전 나선 역외탈세 조사=국세청이 자료를 확보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39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역외탈세 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인 의심자 405명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38명에 대한 정밀 분석이 완료되면 세무조사 대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역외탈세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가능하면 올해 안에 조사를 마무리짓겠다는 방침이다.
이들과 별도로 국세청은 올 상반기 역외탈세 조사를 통해 127명으로부터 6016억원을 추징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4897억원에 비해 22.8%나 증가한 수치다. 역외탈세 추징액은 2010년 5019억원에서 2011년 9637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지난해에는 8258억원으로 주춤했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만큼 향후 해외정보 활동을 더욱 강화키로 했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조사 역량 강화를 위해 2009년 역외탈세 추적 전담센터를 출범시켰다. 또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JITSIC)에 가입하는 한편 한·미 동시 범칙조사 약정(SCIP) 체결,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 등을 잇따라 도입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기 때문에 통상적인 관리 방안으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앞으로 역외탈세에 대한 국제 공조와 해외정보 수집 활동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