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동원] 기업 투자살리기가 정답이다

입력 2013-09-03 17:43


여야는 민생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구체적인 핵심 정책 방향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비전으로 내걸고 있으며, 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창조경제도 경제민주화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창조경제가 틀렸다거나 경제민주화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창조경제 개념은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활로를 열어 줄 수 있는 새로운 비전임은 분명하다. 또한 경제민주화는 왜곡된 경쟁 구조를 바로잡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활동 기반을 확대해 준다는 점에서 타당한 방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창조경제나 경제민주화가 당장에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득을 만들어내는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신음하는 민생을 해결해줄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면 수긍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경제 현실을 보라. 창조경제의 비전이 아무리 근사해도 기업들은 투자 의욕을 낼 만한 여유가 없다. 금년 상반기 설비투자 규모는 작년 상반기보다 8.7% 감소했으며, 2011년 상반기보다도 6.4% 감소된 규모다.

그러면 기업들은 왜 투자를 하지 않는가? 상장기업 12월 결산법인의 상반기 순이익 규모는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작년 상반기 대비 15% 감소했다. 10대 그룹 상장사의 경우도 이익이 늘어난 기업 수는 26개사에 불과하며, 40개사는 이익이 감소했고 13개사는 적자로 전환했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이렇게 악화되었는데 위험을 안고 고용을 늘리고 투자를 하겠는가?

어떤 하반기 채용 계획 조사에 따르면 채용 계획을 가진 기업은 37%로 2009년 35%에 근접했다. 반면 채용 계획이 없다고 밝힌 기업 비율은 44%에 달한다. 즉 취업시장은 2009년의 금융위기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 문제와는 별개로 대법원에 걸려 있는 통상임금 범위 문제와 국회의 상법 개정과 신규 순환출자 금지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게다가 국세청의 세무조사 강화와 금융 당국의 해외 불법소득 유출 조사도 있다. 기업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져 생존게임에 허덕이는 상황임에도 정치권은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 주장으로 국민들에게 애쓰고 있다는 생색내기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민생은 기업들과 정치권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 이미 여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으나 시장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증권시장은 기업들의 자본조달 기능을 못하고 빈사상태에 빠져 있다. 이미 한국경제 곳곳에 저성장 경제의 동맥경화 현상이 퍼지고 있다.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단 하나로 집약하라면 그것은 바로 저성장의 악순환 구조이며, 그 핵심이 투자 부진이다. 세계경제 호전만 쳐다보고 수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10대 그룹의 해외생산 비중이 이미 55%를 넘어서 설사 세계경제가 호전되더라도 그 효과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크게 저하되었다. 우리 스스로 구조개혁으로 경제 환경을 대폭 혁신해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이끌어내지 않는다면 어떤 대책도 해답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장기 침체가 한국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장기적 투자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기업들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격려는 중요한 변화의 신호로 보인다. 기업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 변화의 불씨를 살릴 다음 차례는 국회와 정부의 몫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창조경제든 경제민주화든 다만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다. 기업의 투자를 살리지 않고는 다른 길이 없다.

김동원(고려대 초빙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