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정치와 색깔
입력 2013-09-03 17:42
폴란드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연작영화 블루, 화이트, 레드는 프랑스 삼색기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블루는 교통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은 여인이 남편에게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화이트는 폴란드 미용사와 파리지엔 부부가 이혼하고 복수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모습을 담았다. 동서 유럽의 통합은 정신적 화합을 거쳐 ‘평등’한 관계로 재정립돼야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레드는 이웃을 도청하며 냉소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전직 판사가 여자를 만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되찾는 이야기다.
삼색기는 1789년 바스티유 습격 때 파리 민병대가 모자에 꽂았던 청색과 적색 장식에서 유래했다. 여기에 프랑스 전통색인 흰색을 가미해 1790년 깃발로 제작됐다. 영화에서처럼 삼색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지만 삼부회를 구성한 부르주아(파랑) 성직자(하양) 귀족(빨강)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붉은색은 전통적으로 좌익을 상징한다. 기원은 1848년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사회주의 단체들의 국제연대인 인터내셔널에서 붉은색을 공식 색깔로 쓰면서 정착됐다. 반면 파란색은 우익의 상징색이다. 청색 줄기에 녹색 잎을 가진 나무를 상징으로 쓰는 영국 보수당이 기원이다. 영국 노동당의 상징은 붉은 장미다.
미국의 경우는 헷갈린다. 2000년 대선을 보도하면서 미 언론은 보수주의 공화당을 붉은색, 진보주의 민주당은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이런 쓰임이 고착되자 민주당은 아예 2010년 푸른 로고를 정식으로 채택했고 공화당도 붉은 로고를 쓰기 시작했다.
주로 노랑이나 녹색을 쓰던 우리나라 민주당도 9월부터 상징색을 파랑으로 바꿨다. 청색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보 등의 문제에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 패인으로 꼽힌 만큼 보다 오른쪽으로 이미지를 이동시키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줄곧 파랑을 써왔던 새누리당이 지난해 2월 빨강으로 대표 색을 바꾼 것을 보면 이념은 시간이 지나면 수렴된다는 수렴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행동의 신뢰성이다. 통합진보당은 3개의 보라색 물결이 휘날리는 상징을 채택하고 있다. 진보를 통합해 변화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의미라지만 종북 지하조직 사건으로 다른 진보세력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