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5) 고통의 땅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솜통고 마을 가다
입력 2013-09-03 18:46
하루 한끼로 연명… 에이즈 증세 어린이 병원 갈 엄두 못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에 둘러싸인 아프리카 남동부의 스와질란드. 한국 국토면적의 6분의 1 크기에 인구가 139만명 정도인 작은 나라다. 크고 작은 산이 많아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릴 만큼 경관이 유명하지만 이곳 국민의 상황은 비관적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2011년 발표한 인간개발지수에 따르면 스와질란드의 평균수명은 48.7세며 1000명당 5세 미만 유아사망률이 73명에 달한다. 또 국민의 79%가 하루에 1달러 남짓한 생활비로 연명하며 인구의 26%가 에이즈에 감염돼 있다.
지난달 27일 스와질란드 국경지대인 시셀웨니 지역 솜통고 마을에서 만난 주민에게도 가난과 질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날 월드비전 밀알의 기적 방문단이 만난 탄데카 마부소(10)는 구멍난 옷에 다 해진 신발을 신고 동생 4명과 나무, 돌로 얼기설기 지은 집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흙바닥에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널린 한 평 남짓한 집에서 할머니, 부모와 사는 이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엄마 스자불리레 들라미니(27)씨는 5명의 자녀와 함께 지내면서도 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배고픈 자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녀를 방치하기는 남편인 음즈웰레니 마부소(39)씨도 마찬가지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는 현재 실업상태로 어린 자녀들 앞에서 종종 술을 마신 뒤 아내를 폭행했다. 마부소씨가 병원에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바 있어 아내와 자녀 모두 에이즈 감염이 의심되지만 이들은 병원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서 병원이 먼 데다 치료받을 돈도 없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이들 가정을 돌봐온 월드비전 스와질란드 모빌레 들루들루(37·여) 솜통고 지역개발사업장은 어린 자녀들의 건강상태를 가장 염려했다. 그는 “5명의 자녀 모두 하루 한 끼만 먹는데 이 때문에 신장과 체중이 평균에 현저히 미달되는 만성 영양부족 증상을 보인다”며 “유전적 요인에 영양부족까지 더해 아이들에게 머리카락이 얇아지는 에이즈 의심증상이 나타나는 만큼 정기적인 치료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스와질란드 수도 음바바네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솜통고 마을은 인근에 병원이 없고 저소득층이 밀집돼 있어 다른 지역보다 아동사망률과 에이즈 감염률이 높다. 또 산악지형으로 물을 구하기 힘들어 식량 생산과 식수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 가운데 실업 상태인 이들이 적지 않다.
가난과 에이즈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월드비전 스와질란드는 지난해 ‘솜통고 사업장’을 세워 지역개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물 부족 문제 해결과 보건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월드비전은 물을 얻으려 새벽부터 우물 주변에서 노숙하는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4개의 식수펌프를 새로 만들고 있다. 마을에 29개의 우물이 있지만 시설 노후화 등의 이유로 현재 14개 우물만 사용하면서 물 부족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솜통고 사업장 내 빔비지부코 마을 식수위원회장인 시봉일레 은둘리(45·여)씨는 “새로 우물이 생겨 마을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맹수나 강도 걱정 없이 안전하게 물을 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건사업은 위생 교육과 에이즈 예방 및 치료 중심으로 진행된다. 월드비전은 마을아동보호소(Neighborhood Care Point·NCP)를 세워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아이나 고아 등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의 건강 증진을 돕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최근 월드비전이 지은 NCP 내 화장실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했다. NCP 자원봉사자인 한 마을 주민은 “아이들이 용변 중 맹수들의 공격을 당하거나 하루살이 등 곤충이 옮기는 전염병에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걱정이 많았는데 화장실이 생겨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준 월드비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빈곤 탈피를 위한 소득증대사업 또한 월드비전이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물과 자금 부족으로 실업자가 된 농민을 위해 월드비전은 소득증대위원회와 저축계(Savings groups)을 조직해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이곳 주민 80여명은 스와질란드 전통 양념인 아차(Archaar)와 마요네즈를 만들어 도심의 대형마켓에 판매해 수입원을 다양화하는 한편 저축계에 가입해 저축 습관을 기르고 미래의 사업 밑천을 마련하고 있다.
솔로몬 테스파마리암(43) 월드비전 스와질란드 회장은 “스와질란드는 나라 전체가 에이즈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며 “고아 등 취약계층의 어린이들이 많이 희생돼 월드비전은 이들을 위한 보건 및 영양사업을 최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솜통고(스와질란드)=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