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헴!” 헛기침 소리와 함께 윤목(1에서 5까지 표시된 일종의 주사위)이 굴려진다. 네 명의 시선이 일제히 윤목에 쏠린다. 4가 나오자 탄성과 한숨이 교차한다. 이들이 집중해서 하고 있는 것은 조선판 보드게임인 ‘승경도(陞卿圖)’다.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승경도는 ‘벼슬살이 도표’라는 뜻으로 태종의 책사였던 하륜이 만들었다. 조선 건국 이후 고려와는 다른 관직의 형태와 이름을 양반들이 쉽게 익히도록 고안됐다. 종9품에서 정1품까지의 관직을 순차적으로 승진해 먼저 퇴임하면 이기는 놀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즐겼기 때문에 윤목을 위로 던지지 않고 바닥에 굴리며, 자기 차례에는 점잖게 헛기침을 한 뒤 시작한다.
최근 복원된 전통놀이로는 승경도 외에도 저포놀이와 쌍륙, 고누, 시패놀이 등이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런 전통놀이들은 요즘 들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보드게임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을 예방하고 지능 개발과 인성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국판 전통 보드게임으로까지 이어졌다.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 ‘연’의 김소영 소장은 “전통놀이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사회성과 협동심, 배려심, 대인관계 등을 익힐 수 있다”면서 “이는 학교 내 왕따, 폭력 등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통놀이의 또 다른 장점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5분 내외의 설명을 들으면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우리전통놀이연구발전회 인설현 회장은 “어르신들과 손주들이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전통놀이”라며 “요즘 이런 이유로 어르신들이 문화강좌에서 전통놀이를 많이 배우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지닌 전통놀이가 보편화되는 방안도 향후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전북 지역 초등학교에선 내년부터 시범적으로 전통놀이를 수업시간에 가르치기로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전주한옥마을, 양천향교 등에선 상설적으로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이번 한가위엔 온 가족이 모여 조상들의 지혜가 깃든 전통놀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글=김지훈 기자 dak@kmib.co.kr
[앵글속 세상] 조선판 보드게임에 흠뻑… “e게임 게 섰거라”
입력 2013-09-03 17:20 수정 2013-09-03 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