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참여정부때 ‘부동산 버블’ 경고한 권오규 前 경제부총리

입력 2013-09-03 17:08 수정 2013-09-03 22:50

“집값 하락 앞으로도 계속… 규제 다 걷어내야”

상당수 공직자들은 바쁘게 달려온 인생 1막을 마감하면 산하 기관이나 로펌에 둥지를 튼다. 그런데 33년6개월 관료로 일했던 이 남자는 다른 길을 택했다.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벌써 5년째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일주일에 세 번 스포츠댄스를 하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친 단계’에 들어섰고 “마누라와 춤을 춰도 무지 재미있다”. 내년 국제대회에도 나가볼 생각이다. 관료 시절 그는 누구보다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엘리트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1999년 장관 취임 3개월 만에 현오석 당시 경제정책국장을 내치고 국제통화기금(IMF) 대리이사를 마치고 복귀한 그를 그 자리에 앉혔다. 경제정책국장은 재경부 내 최고 요직으로 상당수 장·차관들이 거쳐 갔다. 강 전 장관은 지난 3월 그 이유에 대해 “일 잘하는 권오규 국장이 해외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수석과 경제정책수석,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그를 두루 중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주 실력 있는 공무원이고 많은 부처에 대해 상당히 센 말발을 갖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추락하는 집값 때문에 주택거래가 안 되고 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정반대로 자고 나면 뛰는 집값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시장에 ‘대못’들을 박은 권오규(61) 전 경제부총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지난달 28일 권오규 교수 연구실을 찾은 이유다.

-최근 전·월세난이 심각하다. 야당에선 전·월세 상한제를 실시하자고 하는데.

“전·월세난의 근원에는 주택시장의 구조변화가 존재하고 있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저금리 정책이 그것이다. 집값 하락이 추세가 되다보니 주택이 더 이상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게 됨으로써 집값 하락을 부채질했다. 주택가격이 올라간다는 믿음이 깨지니까 구입을 기피하고 현금화가 가능한 전세수요로 몰리게 된 것이다. 반대로 주택 소유자는 전세보증금을 받아 봐야 저금리 기조 하에서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가급적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집값하락 추세를 인정하고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전·월세 상한제는 감시비용이 더 든다는 점에서 작동될 가능성이 없다.”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전·월세 종합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다가구 오피스텔 공급확대 방안, 공공소유토지를 활용한 택지공급 활성화, 장기모기지 제도 확대 등 추가적 대안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또 직장 이동 등의 이유로 같은 규모의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수요를 충족시켜 거래를 활성화하려면 취득세를 일정기간 한시적으로 ‘0%’로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여전히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는데.

“분양가 상한제, 양도세 중과 등은 과거 주택시장이 과열됐을 때 일시적으로 채택한 수단이다. 택지공급에서 주택건설까지 5∼10년이 걸리는 공급의 탄력성이 매우 낮은 주택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시장원리에는 어긋나지만 과열된 주택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물리적으로 메스를 가하는 수법을 채택했던 것이다. 지금은 주택시장이 침체기이므로 직접적으로 메스를 가하는 정책은 다 걷어내는 것이 옳다.”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은 얼마 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DTI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런 제도가 도입되었기에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를 근원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규제를 풀면 금융기관의 대출에 쏠림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크고 주택담보 대출이 지금보다 더 증가할 우려가 있다. 이미 가계부채 1000조원, 주택담보대출 380조원으로 과다한 상태에서 금융기관 건전성에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규제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프랑스의 경우 DTI는 생활비까지 감안해 원리금 상환 여부를 심사할 정도로 깐깐하다.”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더 필요한 정책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이제는 주택이 자산증식 수단에서 주거수단으로 인식이 거의 변해가고 있다. 가족 평균 숫자도 3인 이하로 주는 추세에 있으므로 주택정책도 그에 맞추어 변화해야 한다. 결국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리고 민간임대주택 공급도 활성화해 나가야 한다. 토지규제도 더 풀어 직주(직장과 주거지) 근접개념에 맞춰 보금자리 주택공급을 더 활성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1년8개월간 권 전 부총리는 뛰는 집값 때문에 부동산대책을 3∼4번 발표했다.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으름장도 놨고 “강남 집 팔고 분당으로 이사 가면 세금 내고도 돈이 남는다”고 했다가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 생각일까?

“사실은 강남에서 분당으로 이사한 당사자가 나 자신이어서 그대로 말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부동산 불패신화는 이제 깨지고 있다. 집값은 아직도 소득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라 집값하락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세법개정안이 중산층 증세 논란에 휘말려 며칠 만에 수정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공약을 다 이행하겠다면서 증세는 안 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보는지.

“135조원의 복지공약은 세수 증가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충족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브릭스(BRICS)를 비롯, 일본 유로지역 등까지 세계 경제성장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성장도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공약이라 하더라도 수입, 지출 양 측면에서 조정이 필요하다. 먼저 지출 측면에서 ‘보편적 복지’ 공약을 ‘족집게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복지가 꼭 제공되어야 하지만 넉넉한 사람에게까지 이를 제공하기에는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국가부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용인할지 재정준칙을 세워야 한다. 세입 측면에서는 지출증가에 따라 추가세원을 찾아야 하는데 이번 중산층 증세의 조세저항 정도가 매우 컸던 점을 감안해볼 때 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적 증세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선진국처럼 간접세 증세로 갈 수밖에 없는데 부가세, 환경세, 그리고 담뱃세 같은 죄악세(Sin Tax)가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인도 등 신흥국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말 괜찮은지.

“인도네시아, 터키, 인도 등 국제수지 적자가 크고 외환보유고가 적은 나라들이 이번에 타격을 입었다. 우리나라는 외환보유고도 넉넉하고 국제수지도 흑자이므로 이런 나라들과는 다른 입장이다. 우리 외환보유고 3300억 달러 정도는 아직 넉넉지 않으므로 주변국과 스와프 협정을 늘리는 등 울타리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추세에 접어들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노무현정부 4.3%, 이명박정부 2.9%에 이어 올해도 3%가 힘들 것이란 전망인데.

“현재 잠재성장률은 3%대로 하락한 상태이다. 콘퍼런스 보드 전망에 따르면 2013∼2018년 2.4%, 2019∼2025년 1.2%로 떨어진다. 만일 이 상태를 지속한다면 우리나라는 소득 2만∼3만 달러의 중진국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잠재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 투입 확대가 절실하다. 자본은 규제개혁, 상생, 벤처활성화, 중기 활성화 등을 통해 투자촉진으로 이어져야 하고 특히 대기업이 문화유산, 예술, 한류 같은 창조경제분야의 신산업에 보다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노동은 프랑스의 그랑제콜 시스템처럼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한편 부족인력을 이민으로 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들은 이민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하고 적극 활용해왔다. 이를 위해 이민청 설치를 제안한다.”

-최근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10대그룹 총수와 만나 완화할 뜻을 내비쳤는데.

“법무부가 만든 상법 개정안은 부처협의도 다 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경제부처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제출된 안은 과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지난 대선공약 수준으로 전체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대부분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통과됐기 때문에 시행령 만들 때 원래 법 취지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집중투표제를 일괄적으로 의무화시켜서 다 할 것인지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자투표제는 할 필요가 있고 다중대표소송제도 가능성 있다고 본다.”

-참여정부 시절 요직을 두루 거쳤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기적인 부분에 매몰되다 보니 성장률이 중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미리 대비를 해두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 정책은 돌이켜봐도 잘한 것 같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인 금융허브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제시했고,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위한 ‘비전 2030’을 통해 복지에 대한 기본적 틀을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수준에 맞는 복지를 끌고 가기 위해 성장률을 5% 내외로 보고 복지지출 증가율을 9% 안팎으로 잡는 등 합리적 수준에서 큰 그림을 제시했는데 과도하게 복지를 늘리는 것처럼 비춰진 것은 아쉽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노 전 대통령 발언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 당시 배석했는데.

“남북정상회담 한 달여 전 해주를 제2의 경제자유구역으로 개방하자는 제안 등 40여개 과제를 북측에 던져줬다. 개성공단을 위해 도로와 철로를 만들었듯이 해주를 이용하려면 해로로 가야 하는데 양측의 화력이 집중돼 있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서해평화수역 구상도 나온 것이다. NLL 발언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해주 개방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발언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현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애초 공약 내용을 보면 이제는 색깔이라는 것은 어느 정부나 거의 없다. 중도영역의 정책분야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달렸고, 지난 선거에서 여당이 남의 땅을 다 빼앗아온 것이다. 그렇게 약속했던 사항들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하면서 추진해 가느냐가 중요하다. 복지지출을 재점검하고 세입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이의 갭에 대한 재정준칙을 세워가는 게 필요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권오규 前경제부총리는

△1952년 강원도 강릉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미네소타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중앙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74년 15회 행시 합격 △2002년 7월∼2003년 2월 조달청장 △2003년 2월∼2004년 5월 청와대 정책수석 △2004년 7월∼2006년 4월 주 OECD대표부 대사 △2006년 7월∼2008년 2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2009년 9월∼현재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 △부인 김은숙씨와 사이에 3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