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사상 최악의 판결
입력 2013-09-02 18:33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인데다 헌법 해석권까지 갖고 있어 대단한 권위를 자랑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중앙선관위원장의 권한을 합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권위 위에서 수사 전 피의자의 권리를 고지해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을 비롯해 언론자유의 상대적 우월성을 천명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법칙’ 등 주옥같은 명 판례를 남겼다.
그렇지만 현명한 사람들도 때로 실수할 때가 있는 법. 고명한 연방대법관들도 ‘흑인노예가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1857년 판결 당시 미국의 보수적인 견해를 따랐다. 적어도 노예제에 관한 한 새로운 법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19세기 미국의 시각을 반영했을 뿐이다.
발단은 군의관 존 에머슨 박사 소유의 흑인 노예였던 드레드 스콧과 그의 부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스콧 부부는 주인인 에머슨이 퇴직한 뒤 미주리주에 정착하다 사망하자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자유를 사려 했으나 에머슨 부인이 이를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하급법원에서 판결이 엇갈리다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갔다.
스콧은 에머슨 박사가 노예제도가 금지된 미네소타주와 일리노이주로 자신들을 데리고 간 시점에 ‘미주리 타협’에 따라 이미 노예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미주리 타협이란 새 영토에 노예제를 허용할지 여부가 문제되자 미 의회가 1820년 미주리를 제외하고는 북위 36도 30분 위쪽의 모든 지역에서 이 제도를 금지한 것을 말한다. 반면 에머슨 부인은 주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노예제도가 금지된 곳에 노예를 데려가는 경우까지 의회가 간섭할 수는 없다고 외쳤다.
결국 로저 태니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관들은 7대 2의 의견으로 흑인들은 헌법에서 시민이라는 어휘로 지칭한 계급에 포함되지 않아 미국 시민에게 보장하는 헌법상의 권리와 특전 가운데 어느 것도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로 노예제가 첨예한 정치문제로 떠올라 3년 뒤 노예해방론자인 링컨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4명의 후보가 난립한 선거에서 승리하는 계기가 됐다.
노예 해방 100주년을 기념한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평화대행진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절규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지난 50년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명연설로 기억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평화대행진 50주년을 맞아 같은 장소에서 킹 목사 버금가는 명연설을 했다. 최악의 판결이 명연설의 원인이 됐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