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싣고 달려오는 설국열차… 지구 기후변화와 건강

입력 2013-09-02 16:58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설국열차’의 시대적 배경은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 시대의 암울한 지구이다. 제2의 빙하기가 올 수도 있다는 영화 속 가정은 어쩌면 인류에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개발이 지속되고, 끊임없이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면 결국 지구는 최악의 환경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미국 뉴욕타임스가 최근 인용 보도한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간 패널) 평가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인류가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방출할 경우 2100년 해수면이 최대 91.4㎝까지 상승하고, 뉴욕, 상하이, 베네치아 등 유명 해안도시들이 물에 잠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건강대응책 마련돼야= 이러한 기후변화는 인간의 삶 모든 분야에서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 중 하나가 극한기상 발생빈도와 강도가 점차 증가한다는 점이며,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적응책 마련도 인류 건강을 위한 화두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온 증가로 다양한 온열질환과 신종 감염병, 곤충과 식물 매개질환, 각종 암과 바이러스 질환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폭염 응급실 표본조사 결과 일일 최고 기온이 1℃ 증가할 때마다 온열질환자가 69.8%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실시한 기상재해 피해지역 사망자 역학조사 시범사업에 따르면 기상재해의 경우 유가족의 68%가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고위험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장재연 아주대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기후변화건강포럼 공동대표)는 “현재까지 폭염건강대책 업무 담당자와 의무조항, 법적근거 부재로 폭염대책이 효율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상재해와 관련 “거주지 이전과 의료비용 등 경제적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유가족 생존유지에 도움이 될 만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복지체계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는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적응책 마련에 있어 우리나라는 아직 초보단계이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우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대책, 동식물 변화에 의한 알레르기, 천식질환 대책 등을 수십 년 전부터 마련해 왔다. 이에 대해 세계알레르기학회 기후변화위원회 아시아대표를 맡고 있는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국내의 경우 1997년부터 꽃가루 알레르기 데이터를 만들기 시작해 현재 전국 12곳에 꽃가루 측정장비를 설치하고, 기상청과 5년 전부터 꽃가루 예보제를 실시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교수는 “정부가 기후변화에 따른 알레르기, 천식 질환 대응책을 만드는 데 있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차원의 기후변화 건강대응책 절실= 정부도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다양한 건강영향과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3년 유엔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후 1999년 기후변화 범정부대책기구 수립과 종합대책 추진에 이어 다양한 대책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국가기후변화적응대책을 마련해 2015년까지 각 부처별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며, 복지부는 건강부문 실행계획인 ‘기후변화적응 건강관리대책’을 담당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는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 예방과 감염성 질병관리 강화를 내용으로 한 기후변화적응이 14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복지부가 추진하는 세부 이행과제는 ▲지방자치단체 기후변화 건강적응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지원 및 폭염·한파 등 건강피해 감시체계의 구축·운영 ▲매개체 감염병 종합감시망(VectorNet) 구축과 수인성질병 발생 감시대상 취약계층 확대 ▲기후변화 민감 급·만성 질병 관리기술 확보 등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적응책을 통해 취약계층의 피해를 줄이고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후변화 적응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재연 교수는 “박근혜정부에서는 기후변화 인식 제고, 법적·제도적 근거 마련 등 지속가능한 정부정책, 지방정부 및 시민과의 소통, 남북협력사업, 녹색ODA,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기후변화 건강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국가 차원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정책과제 개발도 필요하다. 오재원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질병예방과 치료라는 미시적인 관점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라 질병이 발생하는 사회적 자연적 환경요인을 찾아내고 이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국가차원의 정책 발굴과 연구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병기 쿠키뉴스 기자 songbk@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