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근 목사의 시편] 질서와 무질서
입력 2013-09-02 17:29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줄서는 것이었다. 등록할 때도 줄을 서고 도서관에 가서도 줄을 서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줄을 서는 것이다. 줄서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그게 오히려 불편했다. 빨리 들어가서 식사를 한 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줄서는 것은 시간낭비 같았다. 하지만 줄서는 것이 익숙해지니 참으로 편하고 좋았다. 미국 사람들은 줄서기를 하면서 질서를 배운다. 새벽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교통신호를 지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질서가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고 평안이 있고 안정감이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하였다(고전 14:40).
질서는 본래 코스모스(Kosmos)라는 희랍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화로운 우주를 뜻한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넓은 우주의 조화로운 모습을 질서라고 하니 질서가 잡히면 우주도 아름답고 우리의 모든 생활공간도 아름다워진다. 여인들의 얼굴을 단장하게 질서잡는 것을 뜻하는 코스메틱도 코스모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질서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무질서요, 혼돈이다. 마귀란 말은 희랍어로 디아볼로스(diabolos)라고 하는데 디아(dia·사이에)와 볼로스(bolos·던지다)의 합성어이다. 마귀는 질서를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자를 말한다. 마귀는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영적인 질서를 파괴하고, 우주의 질서를 파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신앙에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마가복음 6장 30절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때도 당시에 모여 있는 5000명에게 예수님은 질서를 강조하셨다. 50명씩, 100명씩 질서 있게 앉아 있을 때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닌 질서의 하나님이다. 질서가 있는 곳에 기적이 있고 역사가 있다. 예배에도 질서가 있다. 방언도 중요하고 예언도 중요하지만 질서 있는 예배가 중요하다. 요즈음은 평신도의 지위가 높아졌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영적인 질서가 있어야 한다. 국가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 개인 의견이 중요하지만 전체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질서이다. 가정에서도 가족 간에 윤리적인 질서가 필요하듯이 직장 사회 국가에도 질서가 필요하다. 한번 질서가 무너지면 다시 잡기 힘들다.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고 권위가 상실되며 각종 범죄와 다툼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질서 있게 창조하셨다. 말씀으로 창조하실 때 이것저것 한꺼번에 창조하지 않으셨다. 최고의 지혜자인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 우주가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소리도 없이 우주 세계는 움직이고 계신다. 지금도 바다는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내며 사시사철 피는 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라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질서가 있는 곳은 행복하다. 아름답다.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