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파이프 오르간 제작 명인 슐츠씨… 수천 개 파이프 해체→청소→조립 ‘소리의 마술사’
입력 2013-09-01 18:31
질문 하나. ‘악기 중의 왕’이라는 파이프 오르간의 전체 파이프 개수는 몇 개일까.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의 것은 2500개가 넘는다. 최장 6m가 넘는 것에서 짧은 건 1㎝짜리까지 길이와 굵기가 다양하다. 웅장한 자태의 파이프 오르간 뒤 보이지 않는 공간엔 이처럼 무수한 파이프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다.
이 교회 파이프 오르간 청소작업을 위해 2주 전 독일에서 날아온 오르겔바우마이스터(파이프 오르간 제작 장인)를 최근 만났다. 40년 가까운 경력의 안드레아스 슐츠(56)씨. 서울의 폭염에 혀를 내두르는 그는 오르간의 몸통 내부에서 연신 땀을 닦아내며 파이프를 하나씩 해체하는 중이었다. 파이프 숫자에 놀라움을 표시했더니 “세종문화회관의 것은 8000개가 넘는다”며 웃었다. 그는 1978년 세종문화회관에 국내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대형 교회와 대학을 중심으로 파이프 오르간 설치가 늘어나고 청소작업이 필요해지면서 일년에 한두 차례는 한국을 찾게 된다고. 그가 속한 알렉산더 슈케 포츠담-오르겔바우사는 120년 전통의 베를린 소재 파이프 오르간 제작사이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장중한 크기의 파이프 오르간은 설치부터가 설계에서부터 고민해야 하는 대작업이지만 청소도 간단치 않다. 수천개나 되는 파이프를 일일이 분해해서 재조립해야 하므로 족히 두 달은 걸린다. 분해된 파이프는 먼지를 털어낸 후 전용세정액으로 닦아준다. 이어 나이프로 파이프 뒷면의 구멍을 미세하게 커팅해서 사운드를 재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슐츠씨는 “피아노를 조율하듯 파이프 오르간도 20년에 한 번씩 청소를 해줘야 제대로 된 소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오르간의 청소작업은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그는 “파이프 오르간은 저마다 다르다”면서 “이를 해체할 때는 그 공간에 맞춰 어떻게 재조립할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시작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마침내 아무 문제없이 완성됐을 때의 기쁨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재조립이 끝났는데 소리가 나지 않거나 작동이 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원래 꿈은 오르간 연주자. 7세 때 다니던 베를린의 교회가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했다. 당시 명문 베를린 음대의 교수가 봉헌 연주를 왔는데, 그 장중하면서도 은은한 선율은 어린 소년의 넋을 빼놓았던 것이다. 음대에 가기 위해 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오르간 연주에는 재능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닫고 마이스터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는 “한국 청소년들도 무조건 대학 진학을 고집하는 것보다 적성을 살려 전문기술직을 갖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