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땅’ 강정에 ‘평화 교회’ 선다
입력 2013-09-01 18:36 수정 2013-09-01 20:37
9월의 첫 날 아침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평화로웠다. 초록 감귤이 따스한 햇살 아래 주황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현무암을 듬성듬성 이어붙인 돌담은 제주도의 여느 해안가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집집마다 대나무 깃봉에 걸린 노란 깃발이 바닷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NO! NAVAL BASE’이라 씌어 있었다. 마을 입구 강정다리 앞에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현수막이 수없이 걸려 있어 어지러울 정도였다.
오전 11시 강정통물로의 좁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양홍찬(54) 안수집사의 집에서 찬송가 소리가 흘러나왔다. 66㎡(20평) 남짓한 집 안에 33명의 성도가 모였다. 거실과 방 세 개가 가득 찼다. 성가대가 없어 교인 모두가 일어나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를 함께 불렀다. 오르간도 마이크도 스피커도 없었지만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라는 맑은 가락이 성도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 깊은 곳까지 적셨다.
가정집이지만 어엿한 교회다. 2011년 9월 18일 첫 예배를 드렸다. 제주대 음악교육과 교수인 조영배 목사와 성도 30여명이 매주 성도들의 집을 돌아가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지난 6년간 큰 아픔을 겪어왔다. 찬성과 반대로 갈린 주민들은 저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기독교인들조차도 싸움 과정에서 나뉘어 아예 교회를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주일 예배를 시작한 조 목사는 지금까지 찬성측도 반대측도 서로를 품어야 한다고 성도들을 독려하고 있다.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마을회관에 찬·반 양측 주민을 모두 초청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반대 입장인 오도진(56) 안수집사는 “친척 사이에도 서로 연을 끊을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며 “찬성 측 주민들을 만나면 아직도 마음이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지만 그래도 이제는 품어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3년여간 교회를 떠났던 양홍찬 집사는 “신앙적·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 쉽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다시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는 정식으로 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화합과 치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교회 소식은 서울 지역 교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갈등의 땅인 이곳에 평화를 노래하는 교회를 세우자는 뜻이 모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북노회와 서울 향린교회(조헌정 목사)의 도움으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2314㎡(700평)의 교회 부지를 마련했다. 교회는 총회 비전2015부와 함께 2016년까지 이곳에 생명평화의 집을 세워 전국의 목회자·성도들이 방문할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100석 규모의 교회는 연말에 완공된다. 건물과 대지는 모두 기장 총회 유지재단에 귀속시키기로 했다.
조 목사는 “우리 마을은 그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아 왔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평화가 필요하다”라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을을 다시 하나 된 마을로 만들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서귀포=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