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손숙,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호흡… “함께 처음 공연한 게 42년전”
입력 2013-09-01 17:16
둘이 합해 연기인생 101년. 올해로 연극 데뷔 각 51년과 50년을 맞은 배우 신구(77)와 손숙(69)이 한 작품에서 부부로 만난다. 작은 손짓 하나, 눈빛 하나로 무대에 깊이를 더하는 이들은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작품은 지난해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인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간암 말기의 아버지를 지켜보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9월 10일 첫 공연을 앞두고 주말도 없이 연습 중인 이들을 지난달 29일 서울 신당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신구가 아버지 역을 맡았다. 17세에 월남해 악착같이 가족을 부양하다 78세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는 이북 실향민이다. 손숙은 아픈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경남 밀양 출신 아내 홍매 역이다.
2010년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 함께 출연했던 손숙이 신구를 추천했다. 손숙은 “사실 라디오(CBS ‘손숙 한대수의 행복한 나라로’)와 지방공연(연극 ‘어머니’) 등으로 무척 바빴는데 제작사(신시컴퍼니)와의 인연으로 하게 됐다. 작품을 보니 신구 선생님이 하시면 제일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신구는 곧바로 “상대가 손숙씨라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라고 거들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파트너 같은 느낌이 든다”는 손숙이 “우리가 처음 한 작품이 언제였더라. 73년인가”하자 신구가 1971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달집’이라고 짚어준다.
42년 전 첫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무심한 듯하면서도 서로를 챙겼다. “나는 국립극단에 3∼4년 있다 자진사퇴했지만 이 양반은 20년 정도 오래 있었지. 오래전부터 함께 했던 기억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지. 사실 찾아보면 연극에서 또 다른 여배우가 얼른 떠오르지도 않아.”(신구)
최근 케이블 채널 tvN ‘꽃보다 할배’로 새삼 인기를 모으며 CF 요청이 쇄도하는 그가 “얼마 전에 족발 광고도 들어왔는데 안 한다고 했다”고 하자 손숙이 “꺼진 불도 다시보자”고 장단을 맞춘다.
연극은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가족의 일상을 덤덤하게 묘사한다. 아픔을 과장하지 않고 부모 자식 간 기억의 지점들을 섬세하게 풀어간다. 손숙은 “반백 년을 살았어도 마지막 순간엔 ‘당신에게 할 말이 많은데’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늙은 부부 이야기”라고 말했다.
손숙의 대사에는 이런 게 있다. “참 이상하제. 사람 무시하는데 일등이고 사람 구박하는데 일등이고. 우리 서로 그랬다 아이가. 지겹고 온갖 정 다 떨어진지 언젠데…. 그런데 마, 이상하제. 저 양반이 간다고 하니, 막상 그러고 보이, 많이 불쌍하고 많이 아파. 내가 아파.”
손숙은 “부부는 ‘웬수’다. 그런데 밉던 양반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자식이나 며느리 앞에서 기가 팍 꺾인다. 알고 보니 영감이 힘이고 든든한 바람막이였던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날 지인의 임종을 지켜본 후라 힘이 쭉 빠진 상태였다. “그 집도 부부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런데 부인이 세상을 떠나려는 순간 남편이 ‘여보, 사랑해’ 그러는 거예요. 평소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막 우는데, 저 얘기가 뭐 그렇게 어려워서 이제 와서 그러나 싶은 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신구는 “나도 그 남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남자는 아니다. 현실에서는 표현이 안 되고,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마지못해 한마디 내뱉게 된다. 살아 있을 때 따뜻하게 보듬는 게 현명한 삶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탁 극본, 김철리 연출의 이 작품에는 두 배우와 함께 이호성 정승길 서은경이 출연한다. 10월 6일까지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 3만∼5만원.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