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철도 안전관리 후진국 행태 아직 못 벗었나
입력 2013-09-01 19:11
경부선 대구역에서 31일 발생한 열차 사고는 안전의식이 얼마나 결여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고 규모에 비해 인명피해가 거의 없어 천만다행이었지만 더 큰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는 한편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고는 KTX 열차가 대구역을 완전히 통과하기 전 대기하고 있던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합류 지점에서 KTX 열차 측면을 들이받으면서 일어난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사고 당시 무궁화호 열차에 ‘정지’ 신호가, KTX 열차에 ‘진행’ 신호가 표시돼 있었다고 한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사고다. 면밀한 조사가 진행된 후에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황으로 봐서는 안전 불감증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경부고속철도와 일반 경부선은 동대구역과 대구역이 있는 대구 도심 구간의 철로를 공유한다. KTX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대구역에서는 고속으로 달리는 KTX 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 새마을호 열차나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는 사례가 흔하다. 새마을호·무궁화호 열차의 경우 역 관제실이 신호기에 출발 신호를 넣으면 여객전무가 이를 확인한 뒤 무전으로 기관사에게 ‘신호기 확인 후 출발하라’고 전달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기관사가 단독으로 판단해 신호기를 보고 출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하니 항상 사고 개연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노선 특성상 수많은 교량과 터널을 지나야 하고 시속 300㎞ 이상으로 고속 운행하는 고속철은 안전을 소홀히 하면 대형 참사를 빚을 수 있다. 외국의 고속열차 사고가 이를 증명해주지 않았던가. 지난달 스페인에서는 고속열차가 규정 속도의 2배가 훨씬 넘는 과속 운행으로 탈선하면서 8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1년 7월 중국 동남부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에서는 멈춰선 고속철을 10분 뒤에 출발한 둥처(動車)가 추돌하면서 탈선·추락하는 바람에 39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했다. 일본 효고현에서는 2005년 곡선 구간을 과속으로 달리던 신칸센 열차가 탈선해 107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빚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KTX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코레일은 2011년 철도의 안전을 항공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후진국형 안전사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땜질 처방으로는 안 된다. 더 큰 화를 부르기 전에 안전제일주의만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기며 근무자세를 가다듬고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