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여·야는 적이 아니라 동지”… 獨정치, 싸우지만 타협한다

입력 2013-09-01 18:11

#1. 40여년 전 독일 여당이던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CDU·CSU) 연합은 니더작센주(州) 고어레벤을 핵폐기장 건설 장소로 지목했다. 하지만 주민 항의뿐 아니라 “새로운 장소를 제시하라”는 사회민주당(SPD)·녹색당의 반대에 부닥쳤고, 이 문제는 정치권의 고질적인 숙제가 됐다.

앙겔라 메르켈 정부도 기존 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민심이 ‘탈핵’으로 돌아서자 야당인 SPD·녹색당의 안(案)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페터 알트마이어 환경부 장관은 올 4월 주 총리 16명과 각 정당 원내대표들을 만나 이를 논의했다. 두 달 뒤 연방의회는 2031년까지 적합한 장소를 다시 찾기로 한 ‘최종핵폐기장소선정법’을 통과시켰다. 메르켈 정부가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2. 2003년 여름, 당시 집권당인 SPD는 야당인 CDU·CSU연합과의 합의를 통해 연방의회에서 ‘공공의료화법’을 통과시켰다. 소득의 14.4%인 공공의료보험비를 2004년부터 13%대로 낮추자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 부담을 높이는 거라 보수당의 반대가 뻔했다. 하지만 여당의 노동·세제 개혁 패키지인 ‘어젠다 2010’에 힘을 실어주자는 차원에서 대합의를 했다. 전체 의원(69명) 중 41명이 야당으로 구성돼 있던 연방참사원(Bundesrat)도 이 법안을 승인했다.

첫 번째 사례는 독일 내 연방정부와 주정부, 여당과 야당 간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대타협 합의로 평가된다. 두 번째도 국민 부담을 덜어주려 보수적 성향의 야당이 집권당인 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권의 손을 잡아준 경우다. ‘어젠다 2010’은 많은 논란과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는 서서히 활력을 찾았고, 이로 인해 현 메르켈 정권의 호황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대타협 정치’는 독일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전문가들은 선거제도 등 정치 시스템 상 정당들이 견제하면서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2개 이상의 정당이 모여 꾸리는 연합정부(연정)의 형태 중 이념과 정책이 다른 보수·진보의 대연정이 그 예다. 지난 60여년 정치사에서 딱 두 차례였지만 2005∼2009년 CDU·CSU연합과 SPD의 대연정은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된다.

SPD의 토비아스 뒤노 대변인은 베를린 중앙당사인 빌리브란트하우스에서 기자와 만나 “우리도 싸우긴 한다. 그게 정치의 본질”이라면서도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정당을 ‘적’으로 보지 않고 같이 가야 하는 ‘동지’로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여야가 어떻게 좋은 해결책을 찾느냐에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베를린=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