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입력 2013-09-01 17:05
소설 첫 문장은 작품 전체의 아우라를 이끄는 마중물과 같다. 그것은 지하수를 뿜어 올리는 펌프처럼 내부에서 외부로 올려진다. 소설 바깥이 아니라 소설 내부에서 뿜어 올려진다.
대대로 언어학자와 음악가를 배출한 예술가 집안의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65)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문학과지성사)은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로 시작된다. 부인이 죽었으므로 소설의 주제는 상실과 관련된다는 게 드러난다. 첫 문장의 마술이다.
음악가인 생트 콜롱브는 첼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의 낮은 7현을 뜯는다. 온몸을 숙이고 다리 사이에 악기를 끼운 채 밀착하는 이 연주법은 죽은 아내를 불러내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 죄책감으로 망자를 불러내 다시 사랑하기를 꿈꾸는데, 온몸을 밀착할 수밖에 없는 연주법은 ‘사랑하기’의 다른 형상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을 통해 죽은 아내와 만난다.
생트 콜롱브는 실존했던 프랑스 음악가이다. 그에 대해서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남아 있다. 뽕나무 위에 오두막을 짓고 연습했다는 것. 비올라 다 감바의 저음을 보강하기 위해 제7현을 덧붙였다는 것. 궁정악사를 거부하고 두 딸과 함께 집에서 연주했다는 것. 역시 실존인물인 마랭 마레가 그의 오두막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몰래 훔쳐 듣고 당대 최고의 궁정악사가 됐다는 것. 주옥같은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걸 출판하지 않고 혼자만 간직했다는 것.
영광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굳이 음지를 선택한 생트 콜롱브의 삶을 통해 저자 키냐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상실에서 오는 쾌감이다. 죽은 아내가 옆에 왔다는 걸 아홉 번째 느낀 어느 해, 생트 콜롱브가 “당신을 만질 수 없어 고통스럽소”라고 말하자 아내는 “바람 말고는 만질 게 하나도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키냐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부분이다. 만질 게 하나도 없는 현재의 상실을 즐기는 것. 음악이 현재진행형의 상실이라면 언어는 끝나버린 사랑이다. 1991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