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안심은 금물”… 청정한국 지켜라
입력 2013-09-01 17:42 수정 2013-09-01 17:43
미국 메이저리그의 ‘천재 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38·뉴욕 양키스),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42·미국), 미국 육상의 간판스타 타이슨 게이(31)….
이들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에서 한순간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팬들은 금지약물을 사용한 이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올해 들어 미국 스포츠계는 유난히 심한 ‘도핑 몸살’을 앓고 있다. 도핑(Doping)은 선수가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금지약물의 힘을 빌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도핑 청정국일까? ‘도핑과의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서울에 있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시료 채취와 금지약물 사용 선수의 제재 결정)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시료 분석과 결과 제공)을 찾아 한국 ‘스포츠 경찰들’의 활동을 살펴봤다.
◇“이제 소변 마려워요?”=깨끗한 스포츠 환경을 만들기 위한 ‘도핑과의 전쟁’ 최전선엔 DCO(Doping Control Officer)라고 불리는 도핑 검사관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핑 검사관은 모두 142명(여성 64명)이다. KADA 소속인 이들은 1년 단위로 계약한다. 월급은 받지 않고 대신 대회나 경기에 파견될 때마다 일비를 받는다.
한통정 KADA 교육홍보팀장은 “도핑 검사관들은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본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핑이 전 세계 스포츠계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자 1999년 스위스 로잔에 세계도핑방지위원회(WADA)가 설립됐다. 우리나라에선 2006년 도핑방지기구인 KADA가 출범했다. KADA는 대한체육회 산하 각 종목의 대표 선수들은 물론 가맹경기단체 선수들의 도핑 시료 채취와 금지약물을 사용한 선수들을 관리한다. KADA는 아마추어 선수가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이면 청문회와 제재결정위원회를 통해 견책부터 자격정지, 영구 퇴출까지 징계를 내린다. 지난해엔 283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15명(0.53%)을 적발해 징계를 내렸다. KADA는 현재 프로 선수에 대해선 징계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KADA는 프로단체들과 협약을 맺어 도핑 테스트를 돕고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KADA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관장 하에 1년에 네 차례 불시에 소변 시료를 채취한다. 보통 경기운영위원이 팀별 5명(총 10명)을 지정한다. 최근 경기력이 부쩍 좋아진 선수 3명을 고르고 무작위로 2명을 추가한다. 금지약물을 접하기 쉬운 외국인 선수들은 전원 도핑 테스트를 받는다. 2007년 시작된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프로야구 선수는 총 세 명(외국인 선수 2명·국내 선수 1명)이다.
도핑 검사관들은 지난해 프로축구 선수 609명을 대상으로 30회, 프로야구 선수 532명을 대상으로 161회 도핑 테스트를 위한 시료를 채취했다.
◇“금지약물을 찾아라”=도핑 검사관은 시료인 선수들의 소변을 채취하면 당일 바로 KIST 도핑컨트롤센터에 금지약물의 분석을 의뢰한다. 그러면 도핑컨트롤센터 연구원 20명은 불법 도핑과 숨바꼭질을 벌인다. 도핑컨트롤센터는 연간 5000여 건(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와 프로 경기 포함)에 달하는 시료를 분석한다.
도핑컨트롤센터는 1984년 9월 설립됐으며, 1987년 세계에서 15번째로 당시 도핑 관리기구였던 IOC(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1999년부터는 WADA가 세계 30여 개 국가의 도핑 실험실을 승인하고 있는데, 도핑컨트롤센터는 그 중의 한 곳이다.
손정현 선임연구원은 “내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그리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면 정신없이 바쁠 것”이라며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내년엔 도핑 테스트 건수가 7000여 건에 다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도핑컨트롤센터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등 큰 국제대회를 대비해 최근 새 건물로 이사하고 최신 장비도 확충했다. 도핑 테스트는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라는 기술을 이용해 이뤄진다. 크로마토그래피란 1906년 러시아의 식물학자 미하일 츠베트가 식물 잎의 색소를 분리할 때 이용한 기술로 각 색소 물질이 용매의 확산에 따라 이동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분리할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소변 시료 분석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유기용매로 추출해 금지약물이 포함된 층을 얻는다. 이어 유기용매를 증발시켜 얻은 잔사 물질을 소량의 용매에 녹인 후 질량분석기로 금지약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다. 혈액의 경우 혈액 속의 세포나 헤모글로빈 등의 특정성분을 검사하는 방법과 혈액 중의 특정 단백질 성분을 분석해 금지약물의 복용 여부를 판별한다.
올해는 아직까지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 도핑이 적발된 사례는 없다. 도핑을 하면 선수생활이 끝난다는 인식이 확산된데다 KADA와 KIST 도핑컨트롤센터 두 기관의 도핑방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해선 안 된다. 도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