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염운옥] 보내지 못한 편지
입력 2013-09-01 17:34
영국 왕실법원은 지난 29일부터 1차 대전 전몰 병사의 편지를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23만여 통에 달하는 이 편지들은 그동안 1300여개의 상자에 나뉘어 버밍엄 교외 아이언마운틴 자료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내년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작업을 마치고 1차분을 우선 일반 공개한 것이다. 후손이나 일반인이 6파운드를 내면 편지를 읽을 수 있고, 전사한 병사의 이름과 군번, 사망원인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아카이브는 보어전쟁에서 포클랜드전쟁까지 망라하는 전쟁 유언장 디지털화 프로젝트의 일부라고 한다.
100년 만에 공개된 보내지 못한 편지. 전장의 포화 속에서 병사들이 쓴 이 마지막 편지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출정 날짜와 연대의 이동경로 등 상세한 정보를 무심코 노출한 경우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혹독하고 지루한 전쟁의 참상을 알리거나, 두려움과 망설임을 고백하는 편지는 후방의 사기가 저하될 것을 우려해 군 당국이 보내지 않았다. 최후를 예감한 듯 편지를 보내는 대신 유서처럼 군복 주머니에 간직한 병사도 있었다.
1차 대전은 인류가 경험한 첫 총력전이었다. 전방과 후방의 경계가 없어진 전쟁, 첨단 무기를 사용한 대량살상이 현실화된 전쟁은 교전국 모두에게 파멸적 결과를 가져왔다. 종전 1년 전인 1917년에는 매일 2000여명의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공개된 편지는 가슴 아픈 사연을 상세하게 전해준다. 영국 프로축구팀 퀸즈파크 레인저스 선수였던 앨버트 버틀러는 1916년 참호에서 포격을 맞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는 비통한 편지를 아내에게 썼고, 며칠 뒤 병원에서 사망했다. 보병부대의 조지프 디치번 이병은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수리 맡긴 자전거를 꼭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두 달 뒤 그는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 부근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고 말았다.
전몰 병사의 편지나 일기가 사료로 활용되는 예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번처럼 23만여 통이라는 방대한 양의 편지가 한꺼번에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개인의 편지나 일기, 회고록, 자서전 같은 문헌은 ‘에고다큐멘트(Ego-document)’에 속한다.
최근 역사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인 에고다큐멘트는 글쓰기가 교육을 받은 소수 교양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엘리트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일상을 일기나 편지로 남기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글로 기록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에고다큐멘트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역사쓰기는 대중의 생활 세계와 체험의 지평으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에고다큐멘트에 담긴 개인의 기록은 때로 국가의 공식 기억과 충돌한다. 공적 역사 서술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개인의 절망과 좌절, 분노와 항변을 전해주는 매체가 에고다큐멘트이다. 제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영국 시인 지그프리트 사순은 ‘참호 속의 자살’이라는 시에서 ‘군대의 행진에 눈을 번득이며 환호하는 젊은이여, 집으로 들어가 기도드리게나. 그 지옥을 알지 못하게 해달라고’라며 전쟁의 광기를 경고했다.
사순은 1916년 6월, 직속상관에게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군 당국에 반항한다. 이 전쟁은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고의로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어와 해방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해 종군한 이 전쟁은 이제 침략과 정복을 위한 전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사순의 유명한 반전선언은 의회에서도 낭독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에 공개된 전사자들의 편지는 어떤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이를 읽어내는 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다.
염운옥 (고려대 연구교수·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