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하이파 실험
입력 2013-09-01 17:34
경제학자들이 이스라엘 북부의 항구도시 하이파(Haifa)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하이파의 보육시설은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부모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경제학자들은 지각에 따른 벌금을 매기는 ‘역(逆) 인센티브’를 고안해냈다.
보육시설 6곳을 무작위로 골라 10분 지각할 때마다 3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비교를 위해 다른 보육시설에는 아무 변화도 주지 않았다. 벌금을 도입한 보육시설의 교사와 경제학자들은 당연히 부모들이 더 이상 지각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금전적 불이익이 지각을 줄여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게 전개됐다. 보육시설 1곳당 1주일에 평균 8번 정도였던 지각은 2배로 늘었다. 한 달 내내 10분씩 지각을 해도 60∼70달러만 내면 되는 탓에 부모들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이를 늦게 찾으러 왔다. 벌금 액수가 너무 낮았던 것이다.
14주 동안 상황을 지켜본 경제학자들은 벌금제도를 폐지했지만 늦게 아이를 찾으러 오는 부모의 수는 벌금제도 도입 이전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반면 아무 변화를 주지 않은 시설은 나빠지지도 좋아지지도 않았다. 시카고대학 교수인 스티븐 레빗의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에 나오는 얘기다.
‘하이파 실험’을 고안했던 학자들은 결과 보고서에 ‘벌금은 가격이다(A Fine is a Price)’라는 제목을 붙였다. 벌금이 지각을 정당화시켜주는 도구, 지각에 따라 보육시설에서 추가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여겨지게 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벌금이라는 ‘경제적 인센티브’는 죄책감 으로 대표되는 ‘도덕적 인센티브’를 대체해버렸다. 일단 도입되자 벌금제를 폐기해도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고, 벌금의 폐기는 지각에 대한 가격을 ‘공짜’로 만들어 버렸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 등에 주목했다. 공정한 경제 질서, 중소기업이 건강하게 경영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경제민주화는 ‘하이파 실험’으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투자 활성화, 일자리 창출로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경제민주화는 ‘지각에 따른 벌금’ 수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이파 실험’에서 보듯 잘못 설계한 인센티브 제도는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벌금을 도입해서 지각 문제는 더 곪았고, 벌금을 폐지했는데도 지각하는 부모가 줄지 않았던 것처럼.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